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Ⅲ
처음으로 의병에 참여한 신돌석은 그 안에서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이에 대한 자료가 마땅하지 않지만, 신돌석의 지역에서는 ‘영해의병’이 활동하고 있었고, 신돌석은 여기서 중군장(中軍將, 중앙에 편제된 부대의 장)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양반이 아닌 평민이, 그것도 장년이 아닌 19세의 청년이 중심 부대의 장을 맡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실제 영해의병의 군제 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은 영해지역의 유력 성씨였기 때문에 19세의 평민 의병이 지휘부를 맡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단지 정황상 신돌석은 영해의병의 중군에서 활약했고, 그가 중군장으로 인식될 만큼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는 정도로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1) 전투에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불타는 의협심은 그를 돋보이게 했을 것이고, 지역민들은 이미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그의 활약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영해의병은 주변 의병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이틀간 전투를 벌입니다. 첫날 전투에서 의병은 승리를 거두지만 이튿날 폭우가 쏟아져 의병은 포 한발 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적의 습격으로 영해의병은 해산하게 됩니다.2)
이 시기 의병은 애초부터 모든 면에서 일본군에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의로운 자들이 불의한 세력에 통쾌한 한 방을 먹이면 좋겠지만, 의병은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무기와 자금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5개월의 긴 저항은 아쉽게도 패전으로 끝납니다.
혈기왕성한 19세의 평민 청년이 의병에 처음 합류할 때 그는 청년의 순수한 의협심으로 불타있었을 것이고, 그 열정으로 힘겨운 5개월의 생활을 견뎠을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참여한 의로운 일이 실패로 끝났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일본군의 막강한 화력에 놀라 앞으로의 의병 활동은 절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을까요? 함께 했던 의병이 죽거나 체포되는 광경을 보며 의병 활동의 허무함을 느꼈을까요? 숨어 다니며 불편한 잠자리와 열악한 끼니를 견뎌냈던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유생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 활동에서의 신분적 차별이 승리의 걸림돌이라며 한탄했을까요?
처음부터 자기 살 생각만 했거나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의심을 품었다면 애초에 의병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시 분위기에 휩쓸려 가담했을 수는 있어도 훗날 역사에 ‘평민 의병장 신돌석’이라는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의인은 현재의 불리한 상황을 알면서도 그 불의한 상황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맞서 싸우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도전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원론적인 이상에 근거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제의 만행으로 지역 공동체가 고통을 겪는 상황을 직접 보고 듣는 과정에서 기인했을 것입니다.
중앙에서 일본이 경복궁을 침입하고 을미사변을 일으킬 때 지방민들은 이미 일본의 경제 침탈을 겪고 있었습니다. 1883년에 체결된 조일통상장정은 전라·경상·강원·함경 4개 해안에서의 일본인 어로 활동을 합법화했습니다.3) 그러자 잠수기가 달린 일본 어선이 동해안에 빈번하게 출현하게 되었고, 각종 수산물을 약탈하여 일본인 어업자들은 조선인보다 10배 많은 수확을 얻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 어부와 일본인 사이에 갈등이 심해져 삼척에서는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의병들은 이 상황을 보고만 있지 않았고 조선의 국경을 침범한 일본인 어민들을 응징했습니다.
러일전쟁 중에는 일본 민간인들이 동해안 연해에 출몰하여 바닷가에 깃발을 세운 후 지역민에게 이곳은 자신들의 땅이니 관여하지 말라거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지방 관아에 그 땅을 샀으니 지배권에 대한 공문을 발급하라는 황당한 일도 있었습니다.4)
청년 신돌석은 의병으로 나서기 전부터 다른 의병들과 마찬가지로 지역민이 겪는 고통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의분이 이미 싹트고 있었고, 너무도 당연하게 의병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따라서 영해의병이 와해된 상황은 19세의 청년을 위축시키기보다 의병과 주민을 살해한 일본에 복수하겠다는 더 큰 의분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해의병의 패전은 의병 활동의 완전한 중단이 아니라 세력 회복을 위한 일시 후퇴였을 뿐입니다.
1) 강윤정, 『신돌석』, 역사공간, 2016, 36·38쪽
2) 강윤정, 『신돌석』, 역사공간, 2016, 39·41쪽
3) 「조일통어장정」,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강윤정, 『신돌석』, 역사공간, 2016, 62-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