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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l 10. 2023

단군세기檀君世紀

홍행촌(紅行村)의 늙은이(叟)(=행촌이암)가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다.

홍행촌(紅行村)의 늙은이(叟)(=행촌이암)가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다.

서론

이 글은 안병우교수님의 환단고기 원전강독과 "얼(뿌리를 찾아서) > 국학(國學) 자료"의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행촌(杏村)이암(李嵒) 선생님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고려 말 행촌 이암(1297(충렬왕 23)~1364(공민왕 13)은  고려의 혼란기에 역사적 역할 이 지대했던 인물이다. 고려 후기 서예가이다. 자는 고운(古雲), 호는 행촌(杏村)이다. 초명은 군해(君侅), 자는 익지(翼之)였으나, 뒤에 흉한 사람의 이름을 피하여 이름을 암(嵒)으로 바꾸고 자도 고운(古雲)으로 고쳤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에는 춘천의 청평산(淸平山)에 은거하기 시작하던 57세까지 (君侅)로 기록되다가 62세 되던 공민왕 7년에 개성으로 돌아와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의 벼슬을 받으면서 '암(嵒)'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개명한 시기는 청평산에 은거하던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말선초 고성이씨 출신의 명인 중에서 후세 선비사회의 추앙을 가장 많이 받은 이가 행촌 이암이다. 원(元)의 성리학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계를 세운 명유 백이정(白頤正)의 고모를 할머니로 하여 회양부사(淮陽府使) 이우(李瑀)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암은 경상도 고성군(固城郡) 송곡촌(松谷村) 앞 바닷가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충렬왕 때 김방경(金方慶)의 중군(中軍) 지병마사(知兵馬使)로 일본 정벌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운 박지량(朴之亮) 장군의 딸이다.

부인은 충렬왕 때 세 번이나 재상을 지내면서 일본 정벌에 전함을 만들어 공을 세우고, 충렬왕에게 「편민십팔사(便民十八事)」를 올려 명성을 떨쳤던 홍자번(洪子藩)의 증손녀이다. 이암의 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계 · 모계 · 처계의 혈연적 인맥은 문무의 정예를 모은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가정환경이 이암의 인품과 사상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암은 17세 되던 1313년 충숙왕 즉위년 8월에 문과에 합격했다. 비서성 교감(秘書省校勘)을 시작으로 비서랑(秘書郞) · 단양부 주부(丹陽府主簿) · 도관 정랑(都官正郞)을 거쳐 감찰 집의(監察執義) ·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 밀직부사(密直副使) · 찬성사(贊成事)를 두루 역임하고 청평산(淸平山)에서 5년간의 은거생활을 마친 후 135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이르렀다.단군세기 서(檀君世紀 序)


단군세기 서(檀君世紀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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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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