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할 상처를 안고서도, 너는.
어떤 글을 읽다 보면, 단지 상상만으로는 쓸 수 없는 감정임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게는 상실의 고통이 그러하다. 한강 작가의 표현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살아넘기는 일”을 겪은 사람만이 적을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고 느낀다. 백수린 작가는 [눈부신 안부]에서 그러한 상실에 대해 쓴다.
‘나(해미)‘는 어린 시절 언니의 죽음을 겪고, 고향을 떠나 독일이란 낯선 나라에서 자란다. 더운 열대 지방에서 살다가 갑자기 뿌리 뽑혀 제주도에 심겨진 야자수처럼, 뿌리를 잃은 고통 속에서, 해미는 한수라는, 독일인이지만 한국인인, 또 한국인은 아니면서 온전히 독일인도 아닌 그 회색지대에 사는 소년을 만난다.
한수와 함께 한수의 엄마,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를 찾으며 해미는 사랑을 배우지만, 상실의 고통으로 망가진 감정의 회로로는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이 한없이 두렵고, 또 거짓을 말하고, 도망치고, 회피하고, 다시 도망치고… 마흔이 될 때까지, 자신의 삶에 깊게 관여하려는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며 산다. 더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을 말미암아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너는 끊임없이 그 핑계를 찾고 있어. 내가 볼 때 너는 정신적 불구야.
완벽하게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퀴즈쇼, 김영하
퀴즈쇼의 한 문장처럼, 언니의 죽음이, 가장 가까웠던 이의 상실이 그를 어떤 정신적 불구로 만든 것이다. [눈부신 안부]는 자꾸만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외면하고, 상자 속에 담아 테이프로 밀봉한 뒤 없는 척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20년도 더 된 시공간을 넘어서 K.H를 찾으며 해미는 수많은 슬픔을 마주한다. 자기 자신의 슬픔—그때 내가 언니 대신 죽었어야 했단 생각, 언니보다 내가 더 나이가 많아지는 것이 두렵다는 불안, 그럼에도 나보다 더 슬픈 엄마를 위해 괜찮아야 한단 강박—, 서서히 엄마를 잃을 준비를 해야 했던 한수의 길고긴 슬픔, 사랑하는 이를 잃어야 했던 선자 이모의 슬픔, 영원히 고향을 잃어버린 파독간호사의 상실.
우리는 자꾸만 삶의 상실로 인해 마모되고, 무너지고, 부서진다. 문장마다 담긴 슬픔의 무게, 그리고 도무지 극복할 수는 없을 듯한 상실의 고통이 페이지마다 마음을 할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나는 누구든 연락이 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없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쉽게 두려워지거든.
한수가 편지에 적은 마지막 문장을 눈으로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 어떤 슬픔은 불멸하다. 세상엔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상처도 있는 법이다.
하여 백수린 작가는 상실은 극복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마흔이 된 해미는 여전히 죽은 언니를 떠올리고, 그의 빈자리를 느낀다. 그리고 아마 한수는 여전히 쉽게 두려워하고 있을 터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없어질까 봐.
해미의 동생도, 이제는 늙은 부모님도, 이모도, 선자 이모도, 이모의 첫사랑이던 KH도. 우리는 살면서 반드시 무언가를 잃고, 훼손되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자꾸만 자꾸만 더 나은 쪽으로, 눈부신 빛 속으로 나아가는 존재라서, 그래서 한없이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래서유서 같은 편지와 연서 같은 일기로 이어진 이 애틋하게 파손된 사랑을 읽을 수 있어 기쁘다.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게 모든 걸 망가뜨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 한강, 각설탕, [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