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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Jun 28. 2022

고마운 나에게

잘했어!


너의 마음은 괜찮니? 항상 이 질문이 하고 싶었어.

착해야 한다. 잘해야 한다.라는 말에 갇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너의 마음에.

그게 뭐라고, 허깨비 같은 문장에 너를 가두고 스스로 힘들게 했는지 몰라.

사실 우리는 따뜻하고 뽀송뽀송한 빨래 같은 삶을 살고 싶었잖아.

걱정은 해보지도 않은 쨍한 얼굴의 해님과 모난 곳 없어 어디든 자유롭게 술술 통하는 바람이 잔뜩 묻은 빨래 말이야.

지금은 아쉽게도 장마가 시작되었어.

새벽의 어스름을 물리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묵직한 밝음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밤사이 뒤척인 내 몸 위로 물에 담가 뺀 듯 눅진한 무게감이 한껏 위세를 뽐내고 있는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시간은 야속하다고 느낄 정도로 우리와 무관하게 빠르게도 흘렀네.

결혼 생활이 12년이라니 말이야.

감사함과 유쾌하고 버거운 감정들이 앞다퉈 고개를 내민다. 결혼과 함께 자연스럽게 맡은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자리가 감사하면서도 버거운 게 사실이야. 여자의 숙명이라며 너 안의 불쑥불쑥 솟구치는 감정을 다독이는 것도 힘들었다는 것 알아. 알면서도 참 비겁했어. 애써 외면하면 너의 마음에서 사라지리라 믿었는지 모르겠어.


몇 주 전 뼈에 붙은 살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의 작고 앙상해진 시어머니에게 대거리를 했잖아. 그때 머리 위로 천사와 악마가 서로 옳다며 자기 말 들으라며 위세를 떨었지.

‘꼭 지금 서운함을 말해야 하니? 이왕 참고 살았던 시간인데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아니야,

‘지옥 같은 불구덩이로 너를 계속 밀어 넣어야 하니? 참지 마!. 언젠가 터질 일이야. 시기가 조금 아쉬울 뿐이지. ‘

너는 끝내 후자를 선택했어.

시원할 것 같던 마음은 생각 같지 않았잖아. 오히려 끈적하고 무거운 추가 마음에 떡하니 들러붙은 것 같은 성가심이 컸지.


생각하면  그날의 시간은 참 얄궂게도 같은 날, 같은 차 안에서  일어났네.

동승자만 달랐는데 분위기 또한 극과 극으로 다가왔지.

시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가는 차 안, 단수 끝난 후 수도꼭지에 고여있던 흙탕물이 우르릉 쏟아지듯 악담을 뱉어내셨잖아.

너는 울먹이며 “저는 어머님이 쏟아 내는 악담 다 참고받아 내기만 해야 하나요? 정말 제가 숨쉬기가 힘들 만큼 세상살이가 지옥 같아요”라며 맞받아쳤잖아. 그랬더니 더 흥분해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말아야 할 말까지 다 뱉어내셨지.

그때 너의 마음은 어땠니? 솔직히 이왕 참아온 거 조금 더 참지!라는 마음이 있었잖아.

근데 그걸 내색하면 정말 아슬아슬 벼랑 끝에 걸치고 있는 발끝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것 같아 두려웠어.

지금의 내가 미안한 건 조금 너를 깊은 관심으로 “괜찮다. 괜찮다.”라며 토닥여 주지 못했을까! 싶은 후회가 일어.

우습게도 그날 오후 하교 한 아들을 태워 도서관으로 가는 차 안에서  끝까지 자신 어머니 편인 시누이 전화를 받고 애써 누르고 있던 감정이 비집고 올라와 참았던 눈물을 감출 사이 없이 볼을 타고 내렸잖아.

그때  아들의 위로가 세상 어떤 무엇보다 울림이 컸어.

“슬퍼하지 마요. 엄마는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데요.”라는 말과 부드럽고 앙증맞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주는데 알겠더라.

너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구나. 누가 뭐래도 사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구나. 싶었어.


그날 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날 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나는 그날의 너를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어.

잘 싸웠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 너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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