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날도 있는 거죠!

그래도 버젓이 들으라고 그러는 건 저에게도 상처입니다.

by 핑크뚱

어제는 종일 실시간으로 태풍 2호 마와르의 경로를 지켜봤다. 선명하고 또렷한 태풍의 눈을 보자 섬뜩했다. 여태 이렇게까지 선명한 눈을 한 태풍이 있었던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강한 비바람에 주차된 자동차까지 움직이는 괴력까지 봤으니 연휴 내내 긴장상태였다.


다행히도 태풍은 우리나라를 피해 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겠다는 예보를 했다. 정말 밤새 지붕이 뚫릴 듯한 비가 내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선잠을 잤다. 겨우 잠든 새벽 두어 시간 후 일어나 보니 밤새 요란했던 지붕 위는 잠잠해져 있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밤사이 잠도 설쳤고 며칠째 내린 비의 영향으로 높은 습도 때문에 몸까지 무거운 날이었다. 아무거나 군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대부분 지하 2~3층에 주차를 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지하 1층에 주차 안내를 받았다. 이럴 때는 갑자기 횡재한 느낌이 든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하는 나를 칭찬하며 기분 좋게 주차 안내를 받았다.


안내받은 주차공간은 경차 전용 공간이었다. 3대가 가능한 주차공간에 이미 2대가 주차되어 있다. 양 옆으로 이미 주차된 사이를 내 차가 비집고 들어가 주차를 끝냈다. 나는 솔직히 경차 전용 주차공간에 불만이 많다. 좁디좁은 공간만 허용된 곳이라 주차를 끝낸 후 내리려면 이건 뭐 곡예 수준이다. 차간 주차거리가 너무 좁아 덩치 있는 나는 내릴 때마다 큰 심호흡을 열두 번도 더 해야 한다. 거기다 내 차는 경차 중에서도 큰 편이다. 세차를 할 때 비용을 SUV수준으로 받는 걸 보면 확실히 크다. 그런데 주차공간은 뭐 코딱지만 하다고 해야 할지. 암튼 불만이다.


지하에 주차를 했지만 약처방을 받을 테니 병원 외에 있는 약국으로 가야 하니 우산도 챙겼고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도 챙겼다. 근데 내 오른쪽에 주차되어 있던 차 문이 열리면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주차를 왜 이따위로 하는 거야! 주차공간을 다 차지하면 옆 차에서는 어떻게 내리라는 거야!"

나는 순간 얼음이 됐다. 누군가가 '땡'을 외쳐줘야 하는데... 모든 준비가 끝났어도 내릴 수가 없다. 나보다 먼저 주차했으니 나에게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나도 억울하다. 왼쪽 차가 차선을 물고 주차해 놓았으니 내가 내리려면 오른쪽 차선을 최대한 물고 주차를 해야 했다. 이삼 분 후 옆차에서 내린 아주머니가 내 차 앞에 서서 차들을 살폈다.

'아, 진짜! 나도 억울하다고요. 최대한 차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주차에 혼신의 힘을 갈아 넣었다고요.'

그렇게 차를 살피던 아주머니가 왼쪽 차 쪽으로 움직였다.

"이 차가 문제네. 옆에 공간이 이렇게나 넓은데 주차를 이따위로 하는 거야."

아주머님의 볼멘소리를 어두운 차 안에서 끝까지 듣고 있다 내 눈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내렸다.

나도 아주머니처럼 내 차 앞에 서서 양쪽을 저울질하듯 살폈다.

'뭐야! 자신도 옆에 공간 넓게 넓게 누고 차선에 바짝 붙여 주차했구먼.'

이런 걸 도찐개찐이라고 하던가.


화요일이지만 연휴가 끝나고 한 주의 시작이니 예민할 수 있지. 거기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았을 니 더 예민할 수 있지. 그래 아주머니도 그냥 신경이 날카로워져 꼬투리 잡을 만한 게 있으면 뭐든 화풀이하고 싶었을 거야. 나처럼.


몸이 아프다는 건 가느다란 줄 위에 온몸을 맡기고 위태위태한 줄타기 하는 기분과 비슷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 커 보인다. 예민함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툭툭 옆지기들을 건드린다.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자. 어느 날 불쑥 나타나는 내 모습일 수 있으니.



*참고로 사진의 자동차는 몇번의 변동이 있고 난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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