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얼굴에 똥 쌌어!

좋은 주인 만난 내가 참는다.

by 핑크뚱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돌이입니다. 매시간 새롭고 화려하게 변하는 21세기에 좀 어색하고 촌스러운 이름이죠. 하지만 제 마음에는 쏙 듭니다. 저의 주인님이 행동이 날래고 재빠른 날쌘돌이를 닮았다며 줄여 부르는 이름이거든요. 제가 좀 작지만 이래 봬도 날쌔기가 제법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저를 경차라고 부르더라고요. 역시 주인님은 저를 제대로 간파했다니까요. 이러니 사랑하지 않고 배기나요.


제 집은 하늘을 지붕 삼은 노상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골목길의 쓸쓸함을 온몸으로 참아내고 무더운 여름에는 아스팔트 위 지글지글 끓는 지열을 군소리 없이 받아내며 지내고 있습니다. 솔직한 제 마음이야 다른 친구들처럼 쓸쓸한 추위와 지글지글한 뜨거움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곳에서 편히 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여의찮으니 어쩔 수 없죠. 괜찮습니다. 대신 저에겐 다정하고 좋은 친구들이 많거든요.


주인님이 항상 아들에게 사람은 돈 부자보다 마음 부자가 되어야 한다며 강조하던데, 그럼 저도 부자인 거 맞죠. 일명 다정한 친구 부자요. 제 친구들을 소개해드릴까요. 우선 심술궂을 때는 차갑고 매섭지만 대체로 부드럽고 살랑살랑한 바람이 있습니다. 해는 무척이나 따뜻합니다. 근데 반전 매력이 있어요. 열받아 있을 때는 무서워요. 이땐 될 수 있는 한 조금 거리를 둬야 하는 친구입니다. 나무는 초록초록한 잎의 싱그러움과 향긋한 꽃내음까지 모든 게 신선하고 상큼한 친구입니다. 제가 다른 친구의 심술 때문에 속상해할 때 나무는 자신의 큰 품을 내어주며 시원하고 따뜻하게 위로해 줍니다. 또 다른 친구는 너무 앙증맞고 귀여운 나비입니다. 알록달록 화려한 날갯짓을 하며 살포시 제 얼굴이나 콧등에 앉으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그냥 존재 자체로 기쁨입니다. 거기다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작은 몸으로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다녀 얼마나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요. 정말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이렇듯 좋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항상 즐겁습니다. 이런 게 주인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행복이라는 걸까요. 그럼 저는 세상 최고 행복한 차입니다. 그렇다고 다 다정하고 따뜻한 친구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도 싫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무지 시끄럽고 더러운 장난질이 많은 새들이죠.

얼마 전에 제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뒤에서 큰 차에 들이 받혀 튕겨져 앞 차까지 쿵. 이런 걸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하나요. 암튼 아찔했습니다. 제가 접촉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프기는 또 얼마나 아팠게요. 앞뒤로 찌그러지고 깨져서 한 멋짐 하던 제 얼굴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흉측해졌다니까요. 이 사고로 자동차 병원에 입원도 십일 정도나 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제가 아픈 건 병원에서 투닥투닥해 고치면 괜찮습니다. 근데 주인님이 항상 귀요미라며 애지중지하던 아들의 뒤통수가 찢어졌지 뭐예요. 피부란 살짝만 찢어져도 피가 좀 과하게 흐르잖아요. 손에 흥건한 피에 놀란 주인님의 얼굴은 핏기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없어 허여멀겋고 횡설수설하던 모습까지. 정말 제가 더 놀랐다니까요. 뭐든 혼자서 척척하고 항상 씩씩한 모습의 여장군 같았는데 이날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안쓰러웠습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게 주인님은 별 이상이 없었고 아들도 두 바늘정도 꿰매고는 괜찮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럴 때를 십년감수했다고 하는 건가 봐요! 그렇게 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고도 있었고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제법 예민해져 있습니다. 이날도 한낮의 온도가 30°C에 육박하던 뜨거운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하필 제가 늘 주차했던 자리에 다른 차가 벌써 주차를 했더라고요. 종일 뜨거운 아스팔트를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며 고달팠는데 제가 좋아하는 자리가 없어 더 기운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요. 이날 저의 잠자리는 머리 위로 검고 굵은 케이블이 여러 가닥 얼기설기 모여 두꺼워진 전깃줄 아래가 됐습니다. 그나마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선선해져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종일 피곤했던 저는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많이 피곤했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눈 부신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니까요. 푹 잘 자고 일어나니 평소보다 훨씬 개운했습니다. 근데 자꾸 눈앞이 아른거리는 게 이상했습니다. 뭐지 뭐지 하다 자세히 보니 제 얼굴에 누가 똥을 쌌어요. 간밤에 전깃줄에서 잠든 새가 범인인 듯해요. 저보다 일찍 일어나 자리를 털고 가버려 어떤 새인지는 모릅니다. 밉다 밉다 하니 미운짓만 골라하는 것 같아 더 괘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범인을 찾기로 마음먹고 혼자 추리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새가 멋진 제 얼굴에 허연 똥을 함부로 싸지른 건지 말입니다.


매번 일반 쓰레기 비닐을 쫓아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하느라 길거리를 온통 더럽게 만드는 무식한 까마귀일까요? 아니면 통통통 튀며 까마귀가 헤집어 놓은 쓰레기들 사이를 다니며 먹이를 찾는 앙증맞은 참새일까요? 요즘 부쩍 '뻐꾹뻐꾹' 소리가 많이 들리던데 뻐꾸기일까요? 아니면 어제 까무룩 잠들기 전 전깃줄 위에서 종달 종달 시끄럽게 떠들던 종달새일까요?


범인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여태 흔적도 찾지 못했다니까요. 제 잘생긴 얼굴에 묻은 새똥을 본 주인님은 저의 화나고 슬픈 마음을 바로 알아채셨어요. 그날 바로 세차장으로 데려갔거든요. 쏴, 시원한 물 샤워로 얼굴의 새똥을 씻겨내고 냄새가 향긋한 비누 거품으로 구석구석 발라 새똥을 말끔하게 벗겨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한 물줄기로 제 얼굴과 몸을 뽀드득뽀드득 개운하게 목욕을 시켜줬습니다. 다음으로 마른걸레에 왁스를 발라 반짝반짝 윤기 나는 몸으로 변신. 새똥으로 기분이 바닥을 쳤는데 다시 깔끔한 저로 변신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은 주차장이 따로 없는 게 저에게 미안했던지 그날부터 골목 주차에 더 신경을 써 주셨습니다. 이렇게 다정한 주인님의 마음에 감동받은 저는 그날의 새똥 사건은 잊기로 했습니다.


제 집은 비바람이 함께하는 노상이지만 사랑하는 주인님과 귀요미 아들 덕에 마음만은 부자입니다. 여기다 다정하고 따뜻한 친구들까지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신나고 재미나게 주인님과 함께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새들아, 내 얼굴에 똥은 이제 그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