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이 소환된 날!

by 핑크뚱

나는 한 마리 여린 새였다.


요즘의 건축은 기둥과 보를 이용하기에 벽체가 단단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유독 유리창을 많이 사용해 인테리어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건축을 선호하고 있다. 이렇게 건축된 건물의 유리창에 유독 약한 골격구조를 가진 새들이 부딪혀 죽는 숫자가 연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새들은 유리창이 세상을 막아선 것이 아닌 한 발짝 뒤에서 배경을 이루고 있는 파란 하늘과 푸른 숲과의 연결통로로 믿었을 테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 따뜻한 시선과 풍부한 먹이가 있는 낙원으로 향하는 날갯짓을 멈출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믿었던 새들은 자신의 전력 질주를 위한 힘찬 날갯짓을 막아선 유리창의 존재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유리창 존재를 알지 못했을 수 있다. 찰나의 순간 세상과 연결로 믿었던 투명한 유리가 죽음으로 인도하는 거대한 벽으로 존재했는데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새들은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별 타격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아름다운 자연을 향한 간절한 욕망을 표출한 유리창이 기어이 새들의 날갯짓을 멈추게 하고 끝내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으나 나뭇잎을 일렁이는 바람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 슬펐다. 나약한 새의 힘찬 날갯짓은 끝인 줄도 모른 채 세상과 작별하게 했다. 그에 반해 미련한 나는 아직도 여전히 투명하고 무심한 벽에 부딪혀 깨지고 상처받고 있다.


나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진료실 앞에 앉았다. 며칠 전부터 등에서 수십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됐다. 급기야 샤워 중 따끔함과 쓰라림까지 너무 아파, 요 며칠 컨디션은 곤두박질치는 주식시세표처럼 절망의 시간이었다.


불안한 감정에 서둘러 물기를 닦고 대충 옷을 걸치고 욕실을 나왔다. 그에게 내가 볼 수 없는 널찍한 등짝을 들이밀며 어떤지 물었다. 그는 가뭄에 논바닥 갈라진 듯 바짝 마른 건조한 목소리로 수포가 띠 모양을 하고 넓게 번져 있다고 했다. 목소리에 촉촉한 연민은 완벽히 제거된 대답이었다. 불안한 나와는 달리 그는 건조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다음날 어린이집을 이 년째 다니고 있으나 여전히 적응이 힘든 아들과 병원을 찾았다. 엄마의 통증과는 상관없이 마냥 신이 난 아들이었다. 그 아들을 따로 부탁할 곳도 없으니 당연히 함께일 수밖에 없다. 등의 통증만으로도 신경은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져 있는 내가 어린 아들의 보호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더 서글프고 힘들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긴 대기 후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됐다. 간호사는 아이랑 함께 진료를 볼 거냐며 황당한 눈으로 ‘다른 보호자 없어요?’ 묻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천방지축 아들과 함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는 의사는 내가 앉자 바로 증상을 물었고 나는 그동안 아팠던 이야기를 했다. 곧바로 아픈 등을 보여달라고 했다. 겨울이라 겹겹이 껴입은 옷들이 그날따라 불편했고 거추장스러웠다. 마치 내 마음과 비슷했다. 옷을 채 다 올라가기도 전에 의사는 “대상포진입니다.”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전날 건조하게 말하던 그와 닮은 목소리 같아 서글펐다. 돌돌 말린 옷은 마치 의지할 곳 없는 내 마음같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주책없는 눈물도 동반했다. 그렇게 진료실을 벗어난 후 여덟 시간이 되지 않아 다시 아들과 응급실을 찾았다. 약물 알레르기라고 했다. 내 온몸은 열꽃이 화려하게 수 놓였고 호흡은 가빠져 힘들었다. 가볍고 밝은 낮에서 무겁고 어두운 밤으로 시간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아들을 봐줄 사람은 없어 함께였다. 이런 나의 상황을 전화로 전했으나 그는 바로 퇴근하지 않았다. 참새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듯 한잔 두 잔이 더해져 만취되어 집에 귀가했다. 나는 죽을 것같이 아프고 힘든데 그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마셨다.


내 어린 시절은 늘 아픈 엄마의 서늘한 그늘 탓에 웬만한 아픔은 ‘그 정도로 뭘!’이었다. 당연히 따뜻한 시선은 부족했고 항상 정이 고팠다. 그러니 전날 그가 완벽히 내 아픔을 외면하던 차분한 목소리와 술 취한 모습이 그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던 투명한 벽의 모습을 드러나게 했다. 더 이상 그 벽은 없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거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던 알콩달콩한 신혼의 커튼이 완벽히 거둬졌다. 아들의 보호자는 항상 내가 되어야 했고, 시어머님의 말도 안 되는 트집과 아집에 무너지는 나를 끌어안아 부축하기보다 당연하다는 눈빛으로 ‘그만’을 외치면서 막아섰던 사람. 볼 수는 있었으나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그의 단단한 마음의 벽.


사실 곧 사라질 거라 믿었다. 어리석었다. 그때 내가 진단받은 대상포진으로 인해 그를 믿었던 마음이 돌아서게 했다. 그 후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더 견고하고 단단한 벽을 쌓아 올렸다.


새는 약했고 나는 미련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나의 내면에 고스란히 스며들게 두었다. 이제는 안다. 이제 더 이상 그 벽을 향한 내 날갯짓은 계속될 수 없단 걸. 그래서 멈췄다. 그가 유리 벽이라는 작은 표시만 해 주었더라도 부딪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날갯짓을 계속할 수 있게 그가 벽을 허물지 않는 이상 다시 날 수 없을지도 몰라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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