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아름다운 봄이, 젊음이 점점 사그라든다. 결혼 생활도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점점 아름다움을 잃어 가는 것이 봄날과 청춘을 닮았다.
전날까지 연분홍 꽃비만 흩뿌리더니 아침 등굣길은 연분홍과 초록이 어색하게 조우했다. 초록 잎이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연분홍 아름다움을 흩트린다. 나름 완벽한 봄의 색 연분홍 벚꽃에 푹 빠져있다 한순간 바람에 흩날리며 사그라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예쁘지 않은 건 아니다. 여전히 예쁘나 이미 내 마음은 그 아름다움과 일정 거리가 벌어졌다. 화사한 봄날에서 초록 나뭇잎이 무성한 생동감이 넘실대는 여름으로 가는 길목. 무척이나 짧은 그 시간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게 한다. 그 찰나의 시간에 내 마음은 온통 미운 벚나무가 장악한다. 결혼도 비슷하다. 영원히 아름다울 것 같던 짧은 신혼이 끝났고 무성한 정이 자리 잡는 여름으로 가는 길. 권태기와 마주한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지 매일매일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염색할 때가 됐나 보다. 거울에 비친 희끗희끗한 머리가 영 눈에 거슬린다. 점점 나이 드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흰 머리카락은 내 젊음도 이젠 끝이구나 선고하는 것 같아 싫다. 염색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어릴 때 우스갯소리로 야한 생각 많이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며 친구들이 놀렸는데 나도 모르게 야한 생각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마치 정수리 위로 수북이 내린 눈과 흙탕물 같은 짙은 갈색 머리카락이 뒤죽박죽인 듯 지저분하다. 밤새 내린 하얀 마당에 주인 허락도 없이 누군가 들어와 무수한 발자국을 찍고 나간 모양새라고 나 할까. 결혼도 비슷하다. 어느샌가 상대의 보기 싫은 모습만 눈에 담긴다. 아니 찾지 않는데도 저절로 찾아진다. 자꾸 눈이 그것에만 쏠리니 문제가 점점 커진다.
저녁상을 차리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지나 깔끔한 상차림을 했다. 간단 씨는 앉자마자 허겁지겁 먹는다. 이 날따라 그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다. 우리 각자의 하루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는 밥상 위 맛없는 반찬처럼 볼품없는 신세가 됐다. 나름 다정한 이야기가 오가는 시간을 기대했던 나는 영 마음이 불편해진다. 고개를 좀처럼 들지 않고 내 앞에서 저녁을 먹는 간단 씨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게 배가 고팠어요?”
서서히 고개를 들어 보이며 알면서 무얼 묻느냐는 눈빛으로 답한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됐는데 당연히 고팠지.”
조금 전까지 참외도 한 접시 비웠고, 퇴근해 누워만 있었는데 허기질 일이 있었나? 속으로 의문이 풍선 부풀듯 빵빵해져 갑갑하다. 저절로 입 밖으로는 한숨이 새 나온다.
지금 나의 결혼 생활은 마치 벚나무에 핀 찬란한 연분홍 꽃잎이 바람 따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조금씩 볼썽사나운 초록 잎이 나와 영 마음이 불편한 시기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염색이 필요한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지저분한 모습이다. 이럴수록 더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하지만 귀찮음과 무기력함이 앞으로 나아가는 내 발을 붙잡는다. 이대로 그냥 두면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파괴되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결혼 생활 같다. 마법을 풀 방법은 오직 나만 알고 있다. 내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행복한 시간 여행은 계속될 거다. 평범한 일상으로 가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