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나는 습기를 그러모아 잎에 차곡차곡 저장해 실내 공기를 쾌적하게 만들어. 주로 햇볕이 살짝살짝 들었다 나가는 창가에 자리 잡고 있어. 그러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는 바람이 종종 놀러 와 눈이 번쩍 귀가 활짝 열리는 이야기를 해줘. 말간 유리 너머 다른 친구들 구경하며 놀기에도 좋아. 의외로 뜨거운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워 연약한 내 초록 잎이 화상을 입을 수도 있고 비가 잦은 장마철엔 창문을 꼭꼭 닫아걸어 바람을 통 만날 수 없어 슬퍼지거든.
나는 영어랑 스페인어로 괴물이라는 뜻으로 불려.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꽃말은 기쁜 소식과 헌신이야. 나는 누굴까. 누가 말했지. 그래 맞아. 내 이름은 몬스테라야. 커다란 잎으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특히 잎에 구멍이 뚫리거나 갈라지는 독특한 모양을 가졌어. 이건 햇볕의 양에 따라 구멍 개수와 갈라지는 모양이 달라져.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더 괴물 같게 아니 이쁘게 키우기 위해 해를 향해 빙글빙글 돌려가며 키워. 정말 신기하고 특별하지 않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진해의 아담한 단독주택 거실 창가야. 나와 비슷한 점이 너무 많은 주인아줌마가 정성껏 돌봐주고 있어. 나는 아줌마가 참 좋아. 어떻게 알았는지 목마르다는 걸 단박에 알아내고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을 잎에 골고루 돌아가게 요리조리 돌려주며 항상 나를 살펴. 혹시 심심해할까 봐 친구들도 몇이 함께 있어. 나처럼 초록이 매력적이고 잎이 손바닥을 펼친 듯 보이는 대나무 야자와 하얀 꽃이 예쁜 스파티필룸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더 많은 친구는 필요 없어. 오히려 복잡하고 내 자리만 줄어들걸. 아줌마도 나처럼 많은 친구를 원하지 않고 잦은 만남도 성가신 것 같아. 그 대신 대부분 오래된 친구들이더라. 서로 속속들이 모르지 않아 편하고 잘 맞나 봐.
나는 주로 밤에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해. 대부분 그날의 주인아줌마 이야기야. 그중 하나가 우리 눈높이에 딱 맞춰진 아줌마의 굵은 다리 이야기야.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서(진짜 조금이야) 종일 종종거리며 집안일하느라 활동량이 많은데 신기하리만치 활동량에 비례해 다리 굵기가 커진다는 거야. 내가 어릴 때부터 이 집에서 살아서 많은 사람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줌마를 제외한 다른 두 남자는 내 줄기처럼 날씬해. 오히려 그게 이상한가. 모르겠다. 일단 정말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보기가 힘든데도 다리가 굵단 말이야. (내 옆에서 책 읽을 때 빼고는)
특히 나랑 아줌마의 비슷한 점은 바람과 햇볕이 자주 드는 창가를 좋아한다는 거야. 집안일 끝내고 잠시 쉴 때면 내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책 읽기를 좋아해. 그 시간은 내가 아줌마를 더 자세히 오래 볼 수 있어. 나는 잎이 크고 풍성하게 자라. 아줌마의 마음도 내 초록 잎처럼 크고 푸짐해. 근데 옆에서 보는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점이 항상 자신보다 주변 사람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거야. 자신을 잘 챙기지 않으니 마음에 구멍이 뻥뻥 뚫려 공허해 보일 때가 있어. 종종 한숨 쉬는 모습을 나한테 들킨다니까.
내 이름이 괴물이라는 뜻이라고 했잖아. 잎에 구멍이 뚫리고 갈라진 모습이 괴상하다고 지어진 이름이야. 아마도 나의 제대로 된 참모습을 알기 전에 지어진 이름이지 않을까 추측해 봐. 솔직히 괴물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거든. 그러니 괴물이 웬 말이야. 아줌마도 그렇더라고. 내가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한다고 했잖아. 단순히 큰 덩치와 목소리로 사람들은 드센 엄마나 아내일 거란 착각을 하는 것 같아. 절대 절대로 오해야. 얼마나 따뜻하고 세심한지 조금만 겪어 보면 금방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이야. 천생 순한 사람이야.
나의 장점 중 하나가 전자파 차단 능력이 탁월해. 그래서 전자기기가 많은 사무실에 많이 놓아둬. 아줌마도 그렇더라. 하나 있는 사랑하는 아들이 전자파에 오래 노출될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핸드폰이나 컴퓨터 사용을 미리미리 체크하고 차단해.
나의 또 다른 장점 중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실내 공기에 포함된 해로운 독소 성분을 제거하고 신선한 산소를 배출하는 거야. 그러니 내가 실내 공기정화식물로도 으뜸 아니겠어. 역시나 아줌마도 똑같아. 밤새 꼭꼭 닫아걸고 잠을 자느라 입 냄새, 각자의 체취가 섞여 오묘하고 독한 냄새가 가득한 방에 겁도 없이 들어가 빠르게 가장 먼저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한 바깥공기가 들어오도록 해. 정말 나랑 닮아도 너무 많이 닮지 않았니. 순간순간 놀랍다니까. 마치 우리가 데칼코마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니까.
나는 세상에 무려 50종이 넘어.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겠어. 역시 아줌마도 다양한 모습에 맞는 여러 종류의 가면을 가지고 있더라. 부드럽고, 친구 같기도 하고, 웃기면서도 무서운 엄마의 모습, 다정했다 친절했다 나쁜 악처 같은 아내 모습. 그 외에도 나열하기도 버거운 많은 모습이 있어. 가까이 있으니 너무 잘 알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 중 대부분 사람은 유독 예민하거나 화가 났을 때의 모습만 기억하는 것 같아. 그건 진짜 내가 다 억울하다니까.
억울하다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그럴 때가 있어. 나의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 큰 잎에 윤기가 반짝반짝하고 짙은 초록이 주는 여유로움과 뛰어난 생장력 아니겠어. 근데 글쎄 그중에 별종 같은 돌연변이가 있어. 초록 잎에 허여멀건 흰색이나 아이보리색의 무늬가 들어가 있는 몬스테라 말이야. 솔직히 이건 어디가 모자란 거야. 근데 사람들은 이 변종에 열광해. 정말 왜 그럴까. 식물이라면 첫째도 광합성. 둘째도 광합성 아닌가. 이 변종은 그런 광합성이 뭔지 잘 모르나 봐. 그러니 엽록소가 결핍되어 잎에 무늬가 생기고 번식도 어려워 개체수가 적어. 근데 튼튼한 나보다 몸값이 열 배가 넘는 것도 있어. 아니 나는 주인 말 잘 들어 햇볕과 바람이랑 매일 놀기만 하지 않고 공부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 몸 관리도 잘해 튼튼하게 자랐더니 오히려 변종보다 찬밥 신세가 된 것 같아 서럽다니까. 아줌마도 이런 나랑 마찬가지야. 열심히 주부로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맡은 역할을 했더니 점점 만만하고 쉽게 보잖아. 어쩜 서러운 것까지 나와 닮았는지. 우리는 마치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고나 할까.
역시 고분고분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게 확실해. 암튼 이제 우리는 다짐했어. 누구보다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말이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바람이랑 햇볕 그리고 함께 있는 친구들과 인생 길지도 않은 것 마음껏 살아보자 다짐했어. 아줌마도 자신을 최우선에 두고 스스로 하나의 우주라 생각하며 귀하게 살기로 했어. 우리는 서로의 앞날을 위해 파이팅을 외쳐주는 친구가 되기로 했어. '인생 별것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