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눈에 담아 보던 내 아이도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을 때가 있습니다.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을 볼 때나 뚫어지게 스케치북에 코를 박고 그림 그리는 뒷모습을 볼 때 감격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렇듯 매번 눈 속에 담고 있어도 모르고 지나치는 순간들이 틀림없이 짜잔 다가와 순간순간 감동을 선물합니다.
저에게 텃밭도 그렇습니다. 매일 눈여겨보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던 것이 훌쩍 자라 자신들을 좀 보라며 채근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럴 때 정말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그동안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채소들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기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훌쩍 자라고 빨갛게 익어가도록 눈에 담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이럴 때면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눈인가 봅니다.
주말 아침에 아무거나 군과 텃밭 구경을 나갔다 부리나케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 볼을 하나 찾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부쩍 자라 손바닥을 닮은 큰 잎이 제발 좀 뜯어 가라며 애절한 손짓을 하는 상추와 하얀 꽃이 예뻐 쳐다보자니 주렁주렁 달린 고추가 꽃 대신 자신을 따가라고 재촉합니다. 뾰족뾰족 가시가 보기만 해도 따끔따끔 아파오는 큰 오이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가시오이도 공중부양하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허리 아프다며 채근했고, 노란 꽃들과 초록초록한 토마토 사이에 희미하게 빨간 존재감을 드러낸 토마토도 지금이 기회라며 장맛비가 오고 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따 볼에 담으라 합니다. 그렇게 예상하지 않게 한가득 볼에 채소를 담았습니다.
나름 저는 장을 볼 때 요리로 무얼 할지 미리 생각해 필요한 것을 사는데 오늘 텃밭은 예상에도 없던 재료들이라 뭘 할지 고민됐습니다. 빨갛고 작은 토마토는 간단 씨의 입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고 고추랑 상추 그리고 오이는 아직 텃밭에서 따온 그대로 볼에 담겨 있고 자신들이 어떤 요리 재료로 쓰일지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아무거나 군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습니다. 오랜만에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기름기 넘치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 먹고 싶다고 합니다. 그럼 간단 씨의 의견은 물으나마나입니다. 말간 소주 한잔에 갖가지 장아찌와 매콤한 청량초를 얹은 상추쌈이면 입가에 미소 걸고 '좋지!' 할 걸 아니까요.
메뉴는 정해졌습니다. 그럼 냉동실에 있는 대패 삼겹살을 냉장실로 이사시켜야겠습니다. 상추는 식초랑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잠시 담가 둡니다. 오이는 가시를 깨끗하게 제거해 필러로 초록 옷을 탈의시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쌈장과 만날 준비를 시켰습니다. 보드랍고 매콤한 청량초는 토막 썰어 쌈에 올려 먹기 좋게 준비해 나눔 접시에 마늘장아찌, 머위장아찌, 백김치와 함께 담아내겠습니다.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마가 오고 난 뒤 텃밭은 오늘의 풍성함을 순식간에 잃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풍성하게 수확 한 재료들로 한 끼 차고 넘치게 마음껏 먹고 즐기겠습니다. 이렇게 신선하고 맛있는 한 끼 음식으로 상위를 채울 수 있게 해 준 텃밭에 감사하며 장마에도 무사히 잘 버텨 주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