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평불만이 많은 편입니다. 그렇다고 그 원인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그다지 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류마티스관절염으로 8개월 넘게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시간을 따져보니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렇다 할 차도는 못 느끼고 있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이런 저를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른 병원에도 가 보길 적극적으로 권하고 잘한다는 병원을 수소문해 소개까지 해줬습니다. 근데 오히려 제가 뜨뜻미지근합니다. 솔직히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는 것은 지금까지 받은 검사를 다시 또 반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한 별 쓸데없는 걱정 때문입니다.
지난주 종일 흐리멍덩했습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날씨가 그랬고 오래 자고 일어났으나 전혀 개운하지 않은 저의 몸 상태도 그랬습니다. 최근 정기진료일에 좀처럼 낫지 않는 통증으로 스테로이드제를 다시 처방받았습니다. 그 후로 통증은 제법 줄었으나 졸음이 쏟아지는 부작용으로 종일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날도 찌뿌둥한 상태로 아들을 등교시키고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제 나름에는 열심히 책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기 위해 아들을 기다리는 장소로 선택했으나 요즘은 통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금의 상태는 마치 따뜻한 햇볕이 창으로 들어오는 나른한 오후에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서관의 조용한 분위기가 저의 몽롱한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이날도 몇 번이나 졸다 바닥에 책을 떨어뜨려 조용한 도서관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얼음 땡으로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연출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끝없이 졸았으나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하교하는 아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 문을 열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마치 정신 못 차리는 제게 뜨끔한 맛을 선물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정신이 온전해지는 듯하다 뜨거운 아스팔트 지열이 도로 제 기분을 바닥 밑으로 끌고 내려갔습니다. 힘없이 터벅터벅 길을 걷다 아파트 물탱크 청소를 위해 둥글고 파란 호스가 인도를 가로질러 도로 옆 하수구에 걸려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물탱크 청소하나 보네. 호스가 인도에 걸쳐 지나가네.
이런 생각을 하며 피해 걸으려 했으나 흐리멍덩한 상태가 빤히 눈으로 보면서 둥글고 파란 호스 위로 발이 올라타 밟았습니다. 순간 저는 둥근 공 위에서 재주 부리는 곰처럼 바둥거리다 그대로 뒤로 꽈당 넘어졌습니다. 정신이 훅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끄러워 얼른 일어나 그 자리를 피했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프기는 어찌나 심한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요즘 제정신머리를 탓했습니다.
요즘 내가 왜 이러지! 도대체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예전 TV에서 <그래, 결심했어!> 외치던 코미디언처럼 저도 결심을 외쳤습니다. 그동안 미적미적한 병원 바꾸기를 더 이상 고민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결심이요.
다음날 지인들이 적극 추천했던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전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과 검사 결과도 챙겼습니다. 의사는 제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가지고 간 처방전과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다니던 병원의 의사도 최선을 다해 처방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 상태가 뭐든 애매해 본인이라도 이렇게 처방했을 듯하다며 말입니다. 처방된 스테로이드제가 너무 강해 지금 제가 호소하는 졸음과 어지러움이 심한 거라 했습니다. 그렇다고 스테로이드제를 줄이면 통증이 심할 테고 통증을 줄이려면 부작용으로 졸음이 심해지는 상태니 나름 최선의 처방이라고 말입니다.
새로 바꾼 병원에서도 속 시원한 말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근데 오히려 그동안 불편했던 마음이 훨씬 줄어든 기분입니다. 그동안 의사분도 제 상태에 맞춰 이것저것 약을 바꿔가며 최선의 방법으로 병의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병원을 바꿔보지 않았다면 계속 불평불만을 하다 허송세월 보냈을 제가 이번 선택으로 나름 마음에 평화를 찾을 수 있어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