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빗소리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병원 정기 진료를끝낸 나는 마치 아지트를 찾 듯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다.
“끼이익, 끼이익”
와이퍼가 연신 퍼붓는 빗물을 쓸어내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닦아도 닦아도 차창은 빗물에 가로막혀 시야가 흐릿했다. 마치 지친 내 마음처럼 아슴아슴하다.
도로 위 줄지어 선 자동차들은 붉은색 후미등으로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차선을 만들었다. 빛만 보면 돌격하는 불나방처럼 나는 그 뒤를 멍한 상태로 따르고 있다.
카톡
메시지 알림음이 빗소리 속으로 섞여 들어왔다. 운전 중인 나는 대수롭지 않게 듣고 빗물에 흘려보내려 했다.
내 핸드폰은 대체로 두 가지 일을 한다. 하나는 전화 걸고 받는 것. 다른 하나는 각종 광고나 도서관의 대출 도서 반납 예정일 안내 등을 알림 받는 것이다. 그러니 특별한 메시지는 아닐 테니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려는데 연속해서 울렸다. 좀처럼 연속해 울리지 않는 알림이라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동시에 혹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울어대는 까치는 아닐지 하는 반가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신호등도 알아챈 건지 신기하게 곧바로 빨간불로 바뀌었다. 자동차를 멈추고 오랜만에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는 핸드폰을 의아함과 설레는 마음으로 손에 가져와 화면을 켰다.
언니~ 어디예요?
혹시 도서관인가요?
시간 되시면 차라도 한잔하실래요.
A의 카톡이다. A와 첫 만남은 작은 공방에서 시작됐다. 당시 나는 갓 결혼해 새로 살게 된 지역과 옮긴 직장이 낯설어 적응이 안 된 상태였다. 그나마 새로운 직장의 점심시간이 2시간으로 꽤 길어 몸과 마음에 강제적으로 여유를 주입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다 싶어 뭐라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알아보다 직장과 같은 건물에 있는 천연공방을 알게 됐다. 짧은 망설임 뒤 점심시간마다 공방에서 천연제품 만들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A는 쌍둥이 아들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육아에 조금의 여유가 생긴 차였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천연제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고 알아보다 자신의 동네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낯선 동네인 공방으로 배우로 왔었다. 아마도 우리의 시작은 낯설어하는 마음이 서로를 끌어당겨 친해지게 된 것 같다. 그때는 제법 함께하는 일이 많았다. 수업 듣고 맛있다는 곳을 찾아 식사도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그러다 나의 임신과 출산으로 시간적 여유가 줄었고 만들기도 흥미를 잃으면서 공방과 멀어졌고 A와의 연락도 연례행사가 됐다. 이번 메시지도 한창 코로나19가 유행일 때 직격탄을 맞은 여행 업체에 A 남편이 다니고 있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안부 전화로 이야기 나눈 게 전부였다. 나는 메시지를확인후 전화했다. A는 곧바로 받으며 내가 안부를 묻기도 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자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천연제품에 대해 배우고 만들었던, 지금은 A의 직장이 된 공방의 원장 이야기였다.
A는 얼굴만큼 마음도 선한 사람이다. 형편이 넉넉지는 않으나 믿음직한 남편과 남부럽지 않은 쌍둥이 아들들과 알뜰살뜰 살림하며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동안 코로나로 가정에 큰 타격이 있었으나 나름 잘 버텼다 스스로 자부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살림하며 모은 돈을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공방 원장에게 투자해 나름 힘든 시기에 도움을 받았다 생각하며 고마워했다고 했다. 투자금의 이자로 겨우겨우 버텼다며 말이다. 몇 달 전부터 들어와야 할 이자가 안 들어오고 목돈도 필요하던 차에 자신의원금을 돌려달라 했다고 했다. 원장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며 공방에도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내가 아는 A가 어떻게 큰돈을 모았을지 눈에 그려졌다. 아마 그 돈은 아내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서 A의 무수한 욕망을 누르고 눌러 담은 것임을 말이다. 그런 돈을 지근거리에서 오래 알고 지켜봤던 원장이 사기를 쳤다. 긴 시간 농축된 A의 욕망을 고스란히 도둑맞은것 같아 애처롭게 느껴졌다.
놀랍고 무서웠다. 사람이 이렇게 잔인하고 폭압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역시도 알고 지낸 시간이 십 년이 훌쩍 넘는 원장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원장은 젊고 자신만만했으며 누구에게나 싹싹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더욱더 원장의 사기가 믿기지 않았다. 더 놀랍게도 그동안 알았던 원장의 시간까지 거짓이라는 거다. 원장의 제법 진짜 같은 가짜 인생 속에 나까지 거짓 같아져 무서웠다. 더 안타깝게도 A를 빼고도 주변에 사기당한 사람도 금액도 어마어마하다는 거다.
오랜만에 요란한 카톡 소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까치 울음소리인 줄 알았는데 안타깝다. 달갑잖은 소식과 강하게 내리는 비 소리가 섞여 무겁게 내 마음을 채웠다. 세상 어는 것보다 사람이 무섭고 또, 애처롭게 느껴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