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삶에서 욕구를 덜어내고 단순하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유행일 때가 있었습니다. 뭐든 쉽게 따라 하는 저는 역시나 별 망설임 없이 시작했고 한동안 집안은 어수선했습니다. 이곳저곳 주인이 세를 놓았는지도 잊고 있던 세입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언제, 무엇 때문에 샀는지도 모를 뜯지 않은 새 물건도 제법 있고 쓰임새가 비슷한 제품역시나 넘쳤습니다.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니 부끄러워졌습니다.여태 제 삶에 생각이란 게 있었나 싶게 쏙빠진 상태였으니까요.
생각이 길을 잃어 헤매는 동안 욕구로 가득 채워졌던 저와 마주하는 시간은 썩 달갑지 않았습니다.우선 당장 필요한 것, 나눔이 가능한 것, 어디에도 쓰임이 없는 것으로 구분했습니다. 다행히도 나눔이 가능한 것이 제법 많았고 그걸 선뜻 가져가겠다는 지인도 있어 빠르게 정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일은 쉽게 충동구매에 휩쓸려 들었던 저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지금은 확실히 물건 앞에서 생각과 생각이 더해져 예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발길 돌리기가 가능해졌으니까요.
제가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가장 힘든 점은 추억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거나 군은좀처럼 자기 물건을 버리지 못합니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방을 보며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이유인 즉 모든 물건에는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고스란히 깃든 것이라 그렇다 했습니다. 처음 아무거나 군의 말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추억이 뭔데? 라며 짜증의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하지만 몇십 년이 흐른 물건 앞에서 주춤거리는 저를 발견하고서야약간은 이해가 됐습니다.
과거 일기장,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여러 곳을 다니며 찍은 사진까지 제 눈앞에 수북이 모였습니다. 그 모든 걸 반 강제적이지만 마주 하고나니 정리는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초대장을 보내지도 않았으나 옛 추억이 불려나와 제 앞에 섰습니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하나하나 읽고 봤습니다.
일기장은 지금의 제가 어린 저를 훔쳐보는 듯해 두근두근 설렜습니다. 당시는 바위처럼 단단하고 큰 문제였으나지금은 유치하기 그지없는 것에 속앓이 하다 울며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마냥 재미있었습니다. 자주 만나 수다 떨던 친구들과 뭘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편지까지 주고받았는지도 신기했습니다.그렇게 마냥 순수한 십 대, 이십 대의 제 모습은풋풋하고 충분히 사랑스러웠습니다. 한참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피시식' 웃음 짓다 앳된 얼굴의 저와 마주했습니다.
어린 시절 제 별명은 못난이었습니다. 동네 어른이 얼굴이 못생겼다며 지어준 별명이었고, 길 가는 옆동네 개들도 알 정도로 아이들은 많이도 불렸습니다. 자존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그 시절 제 별명은 어린 저의 자존감은 자라면 안 되는 잡초가 돼 짓밟혔습니다. 그런저의 못난 얼굴은 스스로 무척이나 싫어했고 그 마음은 이자 불리듯 점점 더 커져아주 못난 사람으로까지 만들었습니다.
저는 혼자 찍히는 사진을 싫어했습니다. 못난 제 얼굴이 더 선명하게 마음에 새겨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근데 언제 찍혔는지도 잊고 있던 혼자 찍힌 사진을 발견했습니다.짧은 상고머리에 크고 환하게 웃는 주근깨가 깨알같이 박힌 제 얼굴이 사진 속을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진 속 저는 너무 예뻤습니다. 하얀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 환하게 웃는 모습은 무척 사랑스러웠습니다. 몰랐습니다. 정말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때의 제가 예뻤다는 걸요. 항상 못난 얼굴과 부끄러움만 가득했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 스스로 못난 얼굴에 부끄러워 움츠렸던 그때야 말로 가장 찬란하게 예뻤다는 걸요. 지금, 현재의 제가 세상 누구보다 가장 예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요. 누가 뭐라 하던 제가 저를 예쁘게 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예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인생 사진은 뚱뚱하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고스란히 보이는 지금의 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