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지교를 꿈꾸는 엄마
제발 부동산에 전화를 걸란 말이야!
새벽 4시. 한여름에는 어스름이 서서히 흩어져 사라지는 시간이었으나 점점 가을로 가고 있는 지금은 여전히 깜깜한 밤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여름이 절정일 때에 비해 찜통 같던 날씨는 한결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나는 늦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살금살금 모두가 잠든 방을 빠져나와 어둠이 가득한 거실의 커튼을 걷어내고 창문을 연다. 내 눈꺼풀에 실오라기처럼 붙은 마지막 잠을 신선한 공기로 털어내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공기가 눈꺼풀을 건드리며 코를 통해 폐부에 닿기도 전에 더 먼저 조용한 새벽을 요란하게 깨우는 것이 있다.
우렁우렁 울리는 요란한 TV소리. 앞집에서 들려오는 최대 볼륨의 TV소리는 새벽의 상쾌함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 길목에서 차단해 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섰다. 마치 상쾌함을 짜증으로 바꾸기 위해 마녀가 외우는 마법의 주문 같은 소리랄까.
여름의 더위가 점점 피부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지금은 창문만 열어도 넉넉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창문을 굳게 닫아 건 집은 소음이 빗발치는 전장의 요새가 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의 시원함과 간질간질한 풀벌레 소리까지 완벽하게 차단하겠다는 마음이 우리 집의 늦여름을 더욱 끓는 찜통으로 만든다.
어지럼증이 생기면서 새벽운동을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대신 새벽독서를 시작했다. 이때도 창문을 여는 대신 밤의 냄새가 가득한 방의 책상에 앉아 뜨뜻한 바람을 힘겹게 내 보내는 선풍기와 함께 책을 펼쳐든다.
지금 내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한 후 머릿속으로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 번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이다. 지금 나의 마음은 과거의 맹자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사 올 때는 주변의 사교육 대열에 휩쓸리지 않고 아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일상을 꿈꿨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었다. 현실이 되기 힘든 한낱 꿈.
좁은 골목길을 걸어 첫 번째와 두 번째 집을 지나며 내가 살고 있는 아담한 정원과 테크가 깔린 마당을 가진 집이 자리 잡고 있다. 아침이면 온갖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해가 불그스레하게 하늘을 색칠하며 서서히 떠오르는 순간은 하루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나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 집이 점점 싫어지고 있다. 이유는 아파트에서나 있을 것 같은 층간 소음. 내가 사는 곳은 주택이니 집간 소음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골목길의 첫 번째 집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음이 문제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은 뭐든 아이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감정조절이 뭔지 몰라 소리 지르고 방방 뛰었던 어린 나와 다르게 어른은 점잖고 고운 말만 쓸 것 같은 환상. 그 환상에 제법 오래 빠져 있었다. 간혹 그렇지 않은 어른들을 만날 때도 몇 안 되는 나쁜 악당정도로 치부하며 나의 환상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정말 환상일 뿐이라는 걸. 오히려 어린아이 보다 더 감정조절이 미숙하고 입에서 뱉어지는 온갖 험한 단어들이 눈살 찌푸리게 한다는 걸.
앞집에는 노부부가 살고 계신다. 그들의 행동반경은 겨울에는 찬바람이 조금이라도 새어 들까 문을 꼭꼭 걸어 닫고 계신다. 그러다 추위가 세상에서 거의 떠나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터 창문이 조금씩 열리고 더위가 시작될 때쯤은 현관문까지 훤히 열어젖힌다. 급기야 갑갑한 방을 피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으로 대부분의 일상이 옮겨진다. 이분들의 생활이 옥상으로 옮겨져 매일 쏟아내는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머리 위로 뽀얗게 눈발이 내려앉은 모습은 누가 보아도 점잖은 모양새를 하고 계신다. 하지만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 탓에 할머니의 목소리는 새벽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구분도 없다. 대화의 대부분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다. 그러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지면 악다구니로 변한다. 잘 듣지 못해 화가 난 할아버지는 아들이 듣기에 너무 거북하고 험한 "십팔*, 이*저*, 쳐 죽일 *" 등등을 일상어로 사용하신다. 여기에 할머니의 신세한탄까지 보태지면 TV에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일일극으로 연출된다.
이곳으로 이사할 당시 아들은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지금보다 덩치도 작고 말에 애교가 많은 아들이 할아버지가 버럭 하며 소리 지르는 "뭐라!"를 따라 했을 때 당황했지만 귀여웠다. 하지만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두 분의 언어 표현은 더 이상 참고 견디기가 힘들다. 이런 내 마음과 비슷한 주변 이웃과 싸움도 발생한다. 그럴수록 그들은 보란 듯이 더 크고 상스러운 말을 뱉어낸다.
아들은 점점 학년이 높아지고 두 분의 소란이 듣기 불편해 이사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태도도 문제이다. 지금의 상황이 말이 아니게 싫지만 또 다른 마음은 이런 환경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집을 판매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불편해 이사를 결심했으니 이 집을 사세요!'라는 마음을 숨기고 부동산에 집을 팔아 달라 하기가 불편하고 죄책감까지 든다. 이러니 내 마음 탓에 어영부영하다 시간은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모든 기능이 더 떨어지게 되어있다. 4년 동안 할아버지의 귀는 더 안 들리는 듯했고, 할머니의 신세한탄은 도를 넘어섰다. 그러니 지금 내가 타인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당장 부동산으로 달려가 '제발, 집 좀 팔아주세요!' 애원해야 할 판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나는 사랑스러운 아들과 내가 아닌 타인을 걱정하느라 여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제발 정신차렷! 매일매일 찌푸린 얼굴로 시작하는 나와 아들을 더 이상 외면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