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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29. 2023

주부놀이

주방 놀이터

놀이터
1. 아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따로 마련한 자리.
2. 어떤 집단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정한 자리.


온통 검은 세상입니다. 눈이 떠졌습니다. 새벽 3시를 조금 넘긴 시간입니다. 유난히 후덥지근한 밤을 이기지 못해 생긴 일입니다. 분명 얼마 전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가을이다.'를 외친 듯한데 착각이었을까요. 순식간에 선선한 바람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요즘 저는 아침과 저녁을 채소. 과일식을 하고 있습니다. 긴 장마와 불볕더위에 과일과 채소의 가격은 천장을 뚫었습니다. 시작이 '하필!'이라며 스스로 타이밍에 대한 후회도 잠깐 했지만 그동안 스스로 제 몸을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값비싼 대가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하튼, 제가 채소. 과일식을 시작한 이후 확실히 어제와는 다른 가벼운 몸과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도 두어 달 전의 저라면 부족한 잠을 탓하며 짜증이 먼저 일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침 독서를 충분히 즐겼고 출근하는 간단 씨와 등교하는 아무거나 군을 생각하며 주부놀이도 즐겼습니다.   


최근 저에게 여럿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로 더운 여름 뜨거운 가스불 옆에서 음식을 할 때면 짜증이 먼저였지만 지금은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스스로 저만의 놀이터란 생각을 하기로 했습니다. 시원한 물줄기, 화끈한 조리 도구, 탑 쌓기 하듯 쌓이는 그릇들에 둘러 싸여 주방 탐험을 한다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주방이 싫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놀이터가 마냥 좋을 순 없죠. 대부분의 시간을 즐기고 좋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간단 씨도 아침은 저와 함께 채소. 과일식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거부감 없이 즐기고 있습니다. 절대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각자의 기호를 존중하는 편입니다. 오늘도 우리 둘은 식탁에 앉아 "당근이 달아 맛있네요." "배도 정말 달다." "오이는 이제 별로다." 하는 가벼운 대화를 즐기며 가볍게 출근 준비도 했습니다.


전날 장을 봤습니다. 이곳저곳 알맞은 곳에 넣고 정리하는 시간이 제법 오래 소요됐고, 평소보다 배가 많이 고픈 저를 위해 두부 김밥을 만든다며 번잡스럽게 해 저녁 식사가 늦어졌습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을 새벽 시간에 후다닥 끝내기로 했습니다. 불고기용 고기는 맛깔스러운 양념에 잘 버물려 잠시 재워 놓고 소분해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장조림용 안심은 깨끗하게 씻어 끓이고 헹구고 끓이는 과정을 거쳐 아무거나 군의 아침 반찬으로 올렸습니다.


비가 올 듯한 날씨는 습하고 후덥지근한 아침을 선물했습니다. 이런 날 유독 더 자주 많이 흐르는 뜨거운 땀이 오늘은 오히려 개운한 느낌입니다. 방금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 위에 김이 덜 내려앉은 장조림을 올려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 아무거나 군의 입을 보며 이게 행복이구나 느낍니다.


지금의 무더운 여름이 비와 함께 물러나고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은 가을을 데리고 오길 기다리며 주방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심심할 때 한 번씩 놀러 와 즐겨주세요.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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