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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31. 2023

나를 사랑하는 방법

온전히 나만을 위한 깻잎 김치와 고추다대기를 만들다.

인간이 되다만 아이.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되다만'은 사람이 모자라다기보다 부족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저의 모습이 안타까워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여름에도 홑이불이 아닌 누비이불을 덮고 옷은 항상 긴팔을 입는 제가 부모님 눈에는 뭔가 부족한 구석이 있어 그런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이 컸을 듯합니다. 그만큼 저는 살을 에는 추운 겨울보다 오히려 따뜻한 여름을 사랑한 아이였습니다.


이도 결혼 해 아무거나 군을 낳고 육아를 핑계로 생각 없이 먹은 음식들의 공격에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점점 불어난 살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빗줄기가 되어 흐르는 부작용을 데려왔고 그럴수록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습니다. 여기다 언제 찾아온 것인지도 모를 무기력이 양어깨에 올라앉아 주인 행세하며 저를 조정했습니다.


항상 '이러면 안 돼!'라고 열두 번도 더 스스로 다짐했으나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늪인 줄 알면서도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는 큰 핑계로 쉽게 간식과 인스턴트 음식을 찾았습니다. 매일매일 몸무게는 새 기록을 세우며 신기록 달성에 열을 올렸습니다.


어느샌가 제 삶에 <자각은 빠르게 실천은 뭉그적>이라는 생각이 좌우명처럼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쑥불쑥 예의 없이 찾아온 자기혐오는 거울 속 저를 점점 더 미워하고 멀어지게 했습니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쉽게 살 빼는 한약 다이어트에 현혹돼 제법 자주 도전장을 들이밀었습니다. 다행히도 <기쁨은 찰나, 요요는 평생>이라는 큰 깨달음을 선물 받고 쉬운 다이어트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제 몸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고 지쳐있었습니다.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애써 외면한 제 무딘 성격도 한몫했습니다. 저는 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제 몸과 마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듣는 방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 최근 진통제와 신경안정제에 취해 몽롱하고 나른한 일상을 경험하며 앞으로 제 삶이 길을 잃고 허우적일 것 같은 두려움이 채소. 과일식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주부인 저는 저만을 위한 요리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입맛을 고려해 저의 식성은 그들의 식성에 자연스럽게 덮여 버렸습니다. 오히려 모른 척할수록 제 일이 줄어드는 것 같은 착각은 쉽사리 오랜 시간 숙성된 식성을 꺼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채소. 과일식을 시작해 제 안의 식성들이 조금씩 꿈틀댔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제 안의 몸무림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저만의 점심 한 끼를 위해  반찬을 준비하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하고 값진 시간입니다.


긴 장마와 불볕더위에 채소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중 저렴한 깻잎과 청양 고추를 구입했습니다.

아무거나 군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생각보다 분주한 아침을 맞은 저는 깻잎과 청양고추로 저를 위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깻잎은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김치를 담았습니다. 양념장만 잘 만들면 세상 쉬운 요리입니다. 거기다 맛 보장은 확실합니다. 김이 따뜻하게 오르는 밥 위에 깻잎 김치 한 장을 올려 싸 먹으면 입가의 미소는 절로 찾아옵니다.  


양념장은 채소식을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는 당근을 곱게 채 썰어 준비했습니다. 여기에 다진 대파와 참깨, 고춧가루, 올리고당, 진간장과 국간장(8:2) 섞어 준비합니다. 이렇게 만든 양녕장은 쌓인 깻잎에 켜켜이 발라 주면 완벽합니다. 깻잎 특유의 향긋함과 매콤 달콤한 양념장이 어우러진 맛은 말에 뭣하겠습니까. 일단 만들어 드셔보세요.

 

고추다대기는 결혼해 시댁에서 처음 맛을 봤습니다. 별것 없는 반찬에 시큰둥했던 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맛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매운 고추를 다진 후 손끝이 아려 몇 날을 고생했던 기억은 만들기를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믹서기에 휘리릭 갈았습니다. 아쉽게도 너무 곱게 갈아져 씹는 즐거움이 조금은 줄어들었습니다.


고추다대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청양고추와 매운맛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달짝지근한 양파를 함께 믹서기에 넣어 휘리릭 갈아줍니다. 여기에 다진 마늘, 국간장, 향이 고소한 들기름을 넣어 수분이 수중으로 떠날 때까지 보글보글 끓여주면 먹기 가장 적당합니다.

이제 저는 조금씩 천천히 저를 위한 작은 행동을 시작합니다. 누구보다 값진 보석 같은 저에게 숨은 반짝임을 찾아 선물하겠습니다. 이런 스스로 응원을 보내며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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