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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20. 2023

아직은 청와대에 가지 않겠습니다.

INFP

따갑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 앉았습니다. 이날은 과거 조선의 왕들 삶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곳인 경복궁을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으며 돌아볼 계획이었습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바깥세상은 금방이라도 뜨거운 해가 사람들을 불그름하게 익힐 기세였으나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곳에는 우리나라 전통복인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입에서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세상을 쩜쪄먹을 더위가 무색하게 느껴졌고 한복을 잘 차려입은 그들을 보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뿜뿜 솟구쳐 잠시나마 더위도 잊게 했습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은 해설사님의 해설도 40분가량 줄여 30분으로 간략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해설은 근정문을 통과해 대부분 근정전에서 이루어졌고 경회루에서 끝이 났습니다. 이날 해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근정전의 천장에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황룡인 칠조룡이 완벽한 황금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재정적으로 엄청난 무리를 가져온 경복궁 중건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지어졌는데 황금으로 만든 칠조룡이라니 순감 씁쓸했습니다. 엄연히 왕실은 백성의 안위를 우선으로 해야 하나 그것은 뒷전이고 황금으로 만든 칠조룡이 떨어진 왕권과 나라의 존엄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 믿었다는 것에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분노까지 일었습니다.

    

해설이 끝나고 자유 관람을 위해 돌아다니다 경복궁의 처마 너머 청록색 지붕이 불쑥불쑥 보였습니다. 바로 청와대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뜨거운 볕에 청와대란 글귀가 크고 또렷하게 새겨진 챙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였습니다. 청와대를 관람한 관광객이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는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철저한 준비 과정 없이 개방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청와대는 국민의 것이니 주인의 품으로 내어주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거나 군이 다니는 학급 학예회도 꽤나 긴 준비 과정을 거쳐 부모님에게 공개가 됩니다. 하물며 75년가량 민간인의 접근이 불가했던 우리 정부의 최고 권력자 대통령의 관저를 미흡한 준비와 특별한 콘텐츠도 없이 훼손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은 안타깝고 화가 났습니다. 청와대가 졸속 개방되어 이 정부의 치적을 쌓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유물과 명소가 준비의 미흡으로 훼손된 경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과거 <백제 무령왕릉>이 그랬습니다. 시대가 70년대이고 발굴에 정교함이 부족했던 시기에 몰려든 취재진에 의해 유물이 파손되기도 했고 날씨 탓 등 복잡한 상황에 현장을 급하게 정리하다 유물을 한꺼번에 쓸어 담는 우를 범한 최악의 발굴 현장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경궁 동물원 사태도 있습니다. 일제의 고도로 계산된 우리 민족성을 짓밟은 사례라는 것을 학자와 책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유산이 특정의 이익을 위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한 사람입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제가 서울 나들이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청와대 갈 거예요?

저는 청와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보존되어 온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준비 미흡으로 훼손되는 현장에 제가 있다는 것은 끔찍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mbti 성격 유형검사에서 infp 유형입니다.

저는 쉽고 지나치게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이 여려 타인의 티끌 같은 말에도 쉽게 상처받습니다.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아 금방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우정이란 게 천천히 조금씩 조심스럽게 쌓아가야 쉽게 무너지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옆에 머물러 주세요.


절대 성격이 dirty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눈치는 백 단입니다. 타인의 작은 감정 변화에도 쉽게 알아차리고 혹, 나 때문일까 노심초사하는 편입니다. 타인과의 갈등 문제에 대처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아 문제가 발생하면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고 손으로 눈만 가리면 아무도 모를 거란 생각을 가진 아주 유아 수준입니다. 하지만 내면은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저만의 신념, 사상, 가치관이 굉장히 뚜렷하기 때문에 스스로 세운 가치관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일에 잘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런 성격이 말해주듯 제가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굴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스스로 아니다 싶은 것은 끝까지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때론 유통성이 부족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타협이 필요한 부분과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을 확실히 선긋기 합니다. 그러니 아직 청와대에 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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