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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Aug 24. 2023

내가 되는 꿈

내 꿈은 이제부터 내가 되는 것이다.

넌 너만 괜찮으면 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 근데 나도 인간이야.
네 부속품이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고,
넌 괜찮겠지만 난 전혀 괜찮지 않다고.

내가 되는 꿈 中 ___________________ 최진영


내가 초등학생일 시절 가정환경조사.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를 물었고, 부모님은 계시는지 계신다면 학력은 어떻게 되는지, TV는 있는지 있다면 흑백인지 칼라인지, 밥솥과 전자레인지는 있는지 등 가정에 대한 전반적인 것에 대한 조사였다. 선생님이 질문하면 학생들은 손을 들어 답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면 개인 정보 활용 동의서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집이 가난한 걸 반 친구들에게 공표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 어린 나는 대부분 가난 때문에 주눅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가진 것 없고 잘 난 것도 없던 나는 항상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가 됐다. 그 능력도 탁월한 말 그대로 눈치가 빠삭했다. 그 시절 나는 뭐가 되고 싶다거나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보지 못하고 자랐다. 수업 시간에 장래 희망을 말할 때는 항상 앞서 발표한 친구를 따라 선생님, 간호사 등으로 되고 싶은 게 변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고등학교 진학도 그랬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나보다 유능한 선생님 말씀에 내 생각은 가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네가 선택한 거잖아.’ 맞다. 선택은 누구도 아닌 내가 했다. 내 인생에서 나보다 먼저 산 어른들이 대부분 정해 놓은 답을 들이밀며 강요 아닌 강요로 내 생각 따위는 쉽게 뭉개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 인생은 타인의 말에 쉽게 좌지우지됐다. 그 말인즉 내 의지 따위는 삶에 쓸모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듣기 좋은 말로 순하다 했고 순종적인 아이라며 단정했다. 그 틀은 평생 나를 바보 같은 어른으로 자라게 한 것 같은 후회로 한동안 힘들었다.

    

나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특별한 아들을 키우며 돌아가신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아들과 이렇게밖에 낳아 키우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망은 고스란히 나에게 비난의 활을 쏘아댔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내 삶에 주인은 과연 나인가? 내가 되고 싶은 건 뭐였더라? 하는 질문들은 아들을 재우고 난 후 잠들지 못한 시간 동안 내 영혼에 깃들어 우울로 스스로 갉아먹으며 병이 됐다. 그렇게 점점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날을 쌓아갔다. 주변인의 말, 눈빛, 행동들을 곡해하며 스스로 내면에 상처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만난 기쁨이 무르익기도 전에 친구의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나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근 부쩍 건강이 나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책 한 권을 읽고 채소. 과일식을 시작했다. 책 속 작가님의 문장은 쉽게 약해진 내 마음을 건드렸고 설득했다. 그날 평소보다 채소만 많이 먹는 내가 이상했던 친구는 무엇 때문인지 물었고 나는 지금의 몸 상태와 책 이야기도 했다.    

너는 뭐든 그렇게 극단적이다.

그 친구는 뭐든 쉽게 빠져드는 내가 못마땅하다는 말투였다.


특별한 아무거나 군의 육아로 매일매일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을 때 상담센터를 다니던 나에게 비난 같았던 말을 한 친구였다.

무슨 신흥 종교에 푹 빠진 사람 같다. 남들 다 하는 육아 혼자 유난스럽다.

그때의 나는 친구의 말에 쉽게 상처받았고 눈물부터 한 바가지 흘렸다. 불편한 내 마음을 이야기하지도 못했고 내 안에서 곪아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네 생각은 그렇네. 알겠어. 거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친구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듯 하며 바로 튕겨냈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한 것만도 아니었다. 온통 어지럽고 뿌연 흙탕물이 됐다. 속상했으며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 합리화를 찾기 위해 음식을 씹으며 내 생각도 곱씹었다. 느긋한 대화 대신 내 마음은 답을 찾느라 바빴다. 사위가 어둡고 깜깜한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이 정리됐다.     

아니지. 남들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인데 내 마음먹은 대로도 할 수 없나.
꼭 누구의 동의나 허락이 필요한 게 아니지 않나.      

돌아오는 어두운 밤길에 유난히 별은 반짝이는 듯 내 마음이 밝아졌다. 그러며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이제부터 나는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내 욕구를 꾹꾹 눌러 앉히는 미련한 행동을 하지 않을 테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테다. 이제 나는 진정 내가 되는 꿈을 꾼다.



*최진영 작가님의 <내가 되는 꿈>의 제목을 차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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