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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Sep 07. 2023

괜찮으세요?

뜨거운 가슴과 복잡한 머릿속을 달래기 위해 요리를 합니다.

표정을 바라보고 흘리는 눈물은 분노와 감격이다. 분노는 그만큼 근원을 본다. 용서할 수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하여 치가 떨리고 노여운 것은, 상황자체보다 그 배후에 도사린 잘못된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릇됨을 응축하고 있는 자세. 그것을 볼 줄 알 때에 우리는 분노하며 운다.

김소연, <마음산책> 中


요즘 내 마음은 솥단지처럼 부글부글 끓어 뜨겁다. 울분이 가슴을 가득 메웠고 머릿속은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 같다. 지금 이 사회는 정상의 비정상화로 나아가며 나를 점점 불안과 걱정이 가득한 하루하루를 살게 하고 있어 매우 불편하다.


역설적으로 지금처럼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적도 없다. 내가 주부여서 요리하는 걸 싫어 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만큼 요리는 위안이고 안식처가 된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요리는 내 안의 울분을 잠재우고 나를 살리는 소중한 행위이다.


병원에서 류마티스 관절염을 진단받았을 때 억울했지만 안도했다. 아직 여전히 창창한 젊음이어서 억울했고, 친절하진 않으나 공식적으로 나에게 쉼을 선물하는 합당한 명분이 생겨 안도했다. 전업주부로 살며 살림도 육아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힘들어도 꾸역꾸역 내 할 일이라며 참고 인내한 시간이었다. 아마 내심 누군가 강제로라도 쉼을 허락하길 원했는지 모르겠다. 시기가 적절했다. 누구도 아닌 의사가 주부, 아내, 엄마로서 힘든 상황을 조금 내려놓고 최소한의 것만 할 것을 처방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병명이나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그 말 자체가 위로가 됐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 나는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내고 있다. 몸을 움직여서라도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건져내고 싶었다. 대청소하듯 집안을 뒤집고 부지런히 시장을 본다. 장 봐온 재료들 하나하나 다듬고 씻어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고 요리도 한다. 몸을 고단하게 사용할 때 나는 생각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고 특히 요리할 때는 온전한 나를 느낄 수 있어 좋다.


며칠 전 쪽파 한 단과 아무거나 군이 마술 지팡이 같다던 우엉을 샀다. 그날따라 시장 한 귀퉁이에 빨간 노끈으로 칭칭 동여맨 쪽파가 유혹했다. 더운 여름내 떨어져 입맛을 살리기에 자신만 한 것도 없다며 온몸으로 나에게 읍소하는 듯해 냉큼 집어 들었다. 집으로 와 깨끗하게 다듬고 씻어 예쁜 빨간색으로 몸 단장해 쪽파김치로 다시 태어났다. 과연 쪽파의 유혹처럼 시름시름 잃어가던 입맛은 가을 전어 못지않게 뜨끈한 하얀 쌀밥을 마구 불렀다. 아삭아삭 씹는 맛이 좋은 우엉. 한때 다이어트 차로 자주 만들었지만 이번은 새까만 간장에 조려 조림을 했다. 여기에 때깔 살리는데 으뜸인 물엿도 넣어 쫀득한 맛까지 더하니 일품이다. 제법 시간이 필요했지만 완성된 요리 앞에 서니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얼마간은 이 행복이 계속될 것 같아 더 기분이 좋다.


요즘 나는 나를 위한 도시락을 싸고 있다. 아무거나 군을 등교시키고 하교 때까지 도서관에 머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 도시락이 필요하다. 오늘은 직접 만든 쪽파김치와 우엉으로 김밥을 싸 보기로 했다. 요리에 정석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나. 내가 먹고 싶고 만들고 싶은 대로 요리하는 즐거움을 좋아한다.


아무거나 군의 아침으로 계란 프라이를 했다. 계란 노른자를 먹지 않으니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프라이해 아무거나 군의 밥상에 흰자를 올렸다. 두 번 잘 구워진 김 위에 잡곡밥을 올리고 아삭 쫀득한 우엉조림을 가득 올렸다. 여기에 쪽파김치와 노른자 프라이를 올려 돌돌 말아 김밥을 한 줄 쌌다. 다른 하나는 온전히 우엉조림으로만 말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휴게실로 가 도시락을 꺼냈다. 가벼워진 뱃속과 입에서는 어서 김밥을 넣어 달라 아우성이다. 곧바로 입으로 넣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절로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고 머릿속에서는 감탄사를 마구마구 흘려보냈다. 김밥 두 줄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마지막 한 입이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한편으로 나에게 가장 행복한 한 입을 선물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요즘 나는 요리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요리한 여럿 맛있는 음식은 차곡차곡 나의 내면을 채운다. 이렇게 내 안을 채운 다양한 맛이 내 삶에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 믿는다. 서서히 걱정과 불안을 옅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한동안 걱정 없을 것 같은 파김치와 우엉조림.
여러분에게 강추 드립니다. 우엉 김밥!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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