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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Oct 05. 2023

좋은 분들에 기대어 살고 있다.

파아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좋아합니다.

항상 추석 때면 시댁에서 탈출시켜 주고 싶었어요.


유난히 파란 하늘에 하얀 양떼구름이 무리 지어 놀고 그 사이로 반짝이는 해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날, 감사한 말씀에 눈물이 났다. 하늘이 아름다워서일까 아니면 눈이 시려서일까. 아마도 따뜻한 마음이 보태진 덕이겠지만 아름다운 날씨를 탓하며 눈물을 훔쳤다.


차창으로 보이는 밖은 제법 가을스럽다. 살랑이는 바람과 가로수가 제법 불긋불긋해진 나뭇잎이 나부끼며 어우르진 아름다운 춤사위. 여기에 벼는 노랗게 익어 무거워진 고개를 숙이며 황금 들녘을 만들었다.


차로 달리는 도로 양 옆은 내 마음만큼이나 신나 보였다. 노랗게 펼쳐진 들판은 내 마음을 풍성하게 안아 왔고 바람과 나부끼는 나뭇잎은 콩닥콩닥 내 심장을 나대게 했다. 여기에 매섭던 여름날에도 끄덕 없이 넘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벼도 무척이나 고마웠다.


시댁은 시골이다. 자식들 먹일 벼농사와 계절마다 다양한 농작물을 수확해 루 나눠주셨다. 모든 농사일은 늙은 시어머님이 홀로 하셨다. 버거운 농사일로 힘들어 의도치 않게 자식들에게 악다구니 썼고 진심과 달랐을지도 모르나 나는 그 말들에 눌려 상처받고 버거워했다.


그런 시어머님이 나이만큼 늙고 병든 몸에 갇혀 지금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농사일을 손에서 놓아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농사일에서 자유로운 추석 연휴를 보냈다. 하지만 제사가 있어 시댁에 머무는 시간은 여전히 길어 버겁긴 했다. 


추석 다음날 남편의 지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결혼하던 해에 그들은 귀촌해 농사일로 바빴고 우리도 아이를 키운다는 핑계로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대신 잊지 않고 해마다 힘들게 농사지은 귀한 과실과 따뜻한 마음을 함께 집으로 보내줬던 분들이다. 그런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나는 많이 들떠있었고 신나 있었다. 여기에다 이번 연휴의 여유로운 시간까지 보태지니 기쁨 마음만 가지고 만나러 갔다.


만나기로 한 중간 지점에서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온기가 따뜻한 손으로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시며 하신 말씀이 추석 때면 항상 내 생각이 났다며, 시어머님의 성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연휴 때마다 내가 걸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자신들도 농사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쉽게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나는 항상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움의 손길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삶을 오롯이 홀로 견디며 살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확실히 깨닫고 있다. 절대 혼자서는 이렇게나 힘든 인생길을 걸어올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내 옆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좋은 분들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 잡아줬고, 무거운 내 마음을 나눠 가져 줬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좀처럼 우리 곁에서 떠나질 못하고 끈적하게 붙은 늦더위가 있었으나 그 사이로 나는 분명하게 가을을 느꼈다. 짙은 초록에서 조금씩 얼굴이 불긋불긋해지는 나뭇잎처럼 마냥 들끓던 내 마음도 제법 온도 조절을 하며 이제는 뜨겁지 않고 따뜻하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따라가다 보니 다정하고 따뜻한 분들의 마음이 함께 시린 눈으로 들어와 눈물이 흘렀던 거다. 그 눈물에 오랜 시간 켜켜이 꾹꾹 눌러 담은 울분과 서러움이 함께 떨어졌다.


파란 하늘에 마음껏 하얀 얼굴을 뽐내는 구름, 간질간질 간지럼 태우는 바람이 예쁜 가을이 나는 너무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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