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앉아 들깻가루가 듬뿍 들어가 더 뜨거운 칼국수를 식혀 호로록먹던 지인이 나에게건넨 말이다.순간 놀랐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살 빼기가 힘든 사람임을 알아챘다.
생각의 전환, '물 컵에 물이 반 밖에 없네!', '물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 이 말이 내가먹고 있는 비빔밥에도적용될줄은몰랐다. 맛있게 먹고 있지만 점점 줄어드는 양에 슬프기까지 한 웃픈상황이뒤늦게 이해됐다.
어릴 적부터 고봉밥을 먹었다. 맛있는 반찬이 있건 없건 그랬다. 아니면 허기져 농사일을 도울 수 없으니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밥을 먹는다는 것에 행복을 대입한 적은거의 없다.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였을 뿐이다. 그렇게 자란 내가 커서 식당에서 주는 공깃밥에 '헉!'놀랄수밖에없었다. 마치 퍼다만 밥그릇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다니던 직장에서는 같은 과 동료들이전부남성이었다. 깨작깨작 먹는 사람이 없어 잘 먹는 내가 비교당할 일이 없어 다행이었다. 구내식당이 있었으나 입 짧은(좋아하는 것은 원 없이 먹던 사람) 동료 덕에 직장 근처 맛집으로 소문난 곳에 더 자주 다녀 단골손님이 됐다. 평소 우리들의 먹성을 알고 있던 식당사장님은 항상 공깃밥을 다른 손님들보다 푸짐하게 담아 주셨다. 그래도 네 명이서 기본 다섯여섯 그릇의 공깃밥을 미리 더 주문해 먹었다.오죽했으면 실장님께서는우스갯소리처럼 자신의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우와! 내가 소는 키워도 너희들은 힘들다.
그만큼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잘 먹었고 먹는데 진심이다.
통통하고 아삭한 콩나물, 눈으로 보고 알 수 있었지만 절대 믿기 힘든 쫀득한 식감의 가지나물과 호박나물로 착각하게 만든 오이나물까지 여기에 듬뿍 올려진 김가루와 계란 프라이. 푸짐한 양에 충분히 행복했으나먹을수록 점점 줄어드는 양에 심란해하고 있었다.
그 찰나에 지인이 건넨 말이라 순간 난 좌절감을 느꼈다.
난, 절대 살 빼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야 과일과 채소로 배를 달래지만 점심은 도저히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신은 왜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주셨어 매일매일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