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페트병이야. 사람들은 나를 퉁 쳐 플라스틱이라고 불러. 지금 인간 세상은 옛날 옛적의 호환 마마보다 플라스틱인 내 존재가 더 무서운 가봐.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한 달 전쯤 퉁퉁하고 서글서글한 아주머니 손에 들려 마트에서 이 집으로 왔어. 그래 내가 담은 건 맑고 깨끗한 먹는 물이야. 세상 참 많이 변했어. 예전에는 산에서 쫄쫄 흐르는 맑은 물인 약수나 받아 갈 때 사용하던 나를 이제는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으니깐 말이야. 그리고 요즘 웬만한 가정에는 정수기 정도는 다 있던데. 어떤 정수기는 얼음도 나온다고 하더라. 이 집은 정수기가 없나. 아니, 아니 있어. 사용하지 않는 정수기가 수전 옆에 슬프게 자리 잡고 있더라. 주인아줌마가 매년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방치 아닌 방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정수기로부터 들었어. 안 됐어. 우리 같은 물건의 쓸모가 다 됐다는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잖아.
이 집은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은 뒤부터는 수돗물을 끓여 보리차를 마시는 것 같아. 매일 아주머니가 자신만큼 큰 냄비에 볶은 보리를 넣고 끓이는 모습을 봤어. 잠깐! 물을 끓여 먹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그래, 궁금할 것 같았어. 솔직히 나도 그랬거든. 그럼 알고 있는 만큼 이야기해 줄게.
이곳에는 11살 남자아이가 있어. 엄청 수다스럽더라. 조잘조잘 아줌마 옆에서 떠나질 않아. 매일 붙어 있는데 뭔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남자가 입이 너무 가벼워. 솔직히 난 수다스러운 남자는 싫어. 귀가 아프거든. 암튼, 이 아이는 입맛도 까탈스럽나 봐. 아줌마랑 아저씨는 보리차를 벌컥벌컥 엄청 맛있게 드셔. 옆에 있는 나조차 맑은 물을 가득 담았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니깐. 근데 아이는 물에서 냄새가 난다나 뭐라나. 그래서 안 마신다고 하더라. 그러니 어째, 할 수 없이 생수를 사 오나 봐. 그런 이유로 나는 아줌마의 선택을 받고 여기 왔어.
아줌마는 퉁퉁해서 상당히 게으를 것 같았거든. 근데 어찌나 바지런한지 놀랐어. 역시 겉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는 건 금물이야.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이 다는 아니란 거지. 예전 우리도 겉멋 들어 알록달록한 크롭 티셔츠나 전신 슈트를 입고 진열장에서 뽐내던 때가 있었지. 요즘 그러면 사람들한테 욕 엄청나게 먹을 거야. 그걸 벗기는 게 만만치 않잖아.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제 철이 들어 우리는 그런 옷 안 입잖아. 우리 사촌인 양념통들은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 아직도 그러고 있어. 분리할 때마다 아줌마의 커다란 콧구멍으로 씩씩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말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줌마는 양념통 하나하나 깨끗하게 세척해 말리고 잘 안 떨어지는 옷들은 뜨거운 드라이어로 접착제를 녹여 벗겨내. 이렇게 쓰레기를 분리 배출할 때 아줌마는 정말 멋있는 것 같아.
이곳은 요즘 사람들이 흔히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이야. 일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를 하거든. 수요일이 분리수거일이야. 아줌마는 화요일 밤만 되면 세탁실 겸 창고에서 분리된 것들 하나하나 묶어서 깜깜한 한밤중에 골목에 내놓아. 그런데 이날 우리 페트병들은 내놓지 않아. 지금 몇 주째 쌓인 페트병이 자리가 비좁아 갑갑해하고 어두운 창고에 있어 무서워. 근데 왜, 분리수거일에 배출하지 않는지 궁금해지지.
얼마 전 아줌마와 아들이 핸드폰 화면에 코를 박고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어. 거 있잖아. 슈퍼빈의 페트병 수거용 네프론 자판기 말이야. 우리 페트병은 모두 그곳으로 분리배출 하나 봐. 근데 아줌마 집에서 가까운 곳의 네프론이 계속 수리 중이거나 가득 차 몇 주째 창고에 쌓이고 있는 거야. 지저분한 걸 잘 못 참는 아줌마는 우리를 여기저기 옮겨 최대한 복잡하지 않게 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힘들어. 빨리 분리배출돼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거든.
지난 여름 아들과 열심히 네프론으로 분리 배출 하던 때
아줌마는 생각보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가 봐. 솔직히 우리 플라스틱은 좀 억울해. 언젠가부터 환경오염의 대역죄인이 되어 있어. 왜 그럴까. 찬찬히 생각해 봤어.
우리 플라스틱의 역사는 베이클랜드가 발명한 베이클라이트인 최초의 인공 합성 소재로 시작해 그 후 많은 화학자에 의해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만들어졌어. 그때부터 우리가 이곳저곳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어. 저렴하지,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지. 이렇게 처음에는 다양한 쓸모로 기존에 사용하던 것에 대한 불편을 대신하는 대체재로서 역할을 확실히 했어. 그러나 플라스틱의 적절한 역할에 비해 점점 사람들은 지나치게 의존하기 시작했어. 왜? 쉽게 만들 수 있고 저렴했으니깐. 지금도 봐 길거리에서 쉽게 테이크아웃해 마시는 일회용 커피 컵, 빨대 등 인간과 늘 함께 생활하고 있잖아. 그만큼 쉴 틈 없이 우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야. 그러니 이게 돌고 돌아 지금 인간이 사는 지구에게 독이 된 거지. 우리 플라스틱은 미생물로 분해가 어려워. 그만큼 썩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야. 그러니 어째.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우리를 인간이 적게 만들고 그만큼 덜 사용해야겠지. 자꾸 플라스틱인 우리만 탓해서 되겠어.
귀찮아서 번거로워서 플라스틱을 일반쓰레기로 배출하는 사람들 많잖아. 그럼 이게 소각되거나 매립이 돼. 소각될 때는 중금속, 다이옥신 등이 섞인 미세 플라스틱이 배출되지. 그리고 매립하면 침출수가 토양, 호수, 강, 최종적으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그러니 분리배출 철저히 하고, 개인 텀블러 사용해 일회용 플라스틱을 최대한 줄여야겠지.
몇 주간 이 집에서 경험한 아줌마는 분리배출을철저하게 해. 물티슈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그리고 주방 세제도 직접 고체 비누를 만들어 사용하더라. 그중 최고는 여름내 수세미를 재배해 껍질 벗겨 깨끗하게 씻어 말려 사용한다는 거야. 그래서 항상 분주하고 이곳저곳 아픈가 봐. 아줌마만큼 지구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 플라스틱 탓만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지금의 인간들은 편리함보다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선택해야 할 시간이야. 더 늦기 전에 실천해 봐. 나는 아마 오늘 이 집을 떠날 것 같아. 새로워진 내가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게. 다시 만날 때 오늘 내가 말한 것 열심히 지키는 모습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