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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삶, 불안과 갈등


호숫가에 가을 정취가 절정에 올랐다. 깊고 맑은 하늘!

나도 가을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드는 생각들.

온갖 고통으로 불안과 갈등의 한 복판에 있었다.


머릿속은 항상 번뇌로 가득 찼고 때때로 그것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며 타오르는 불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활 활 타올랐다.


평화로운 삶을 꿈꿨다.

호숫가의 아름다운 노을처럼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길 바랬다.


평화로운 삶을 꿈꿨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불안과 갈등, 고통, 그리고 혼돈과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그렇다면 평화로운 삶이란 '쉼'과 같은 뜻일까.


그러던 어느 날 고통이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수준에 다다랐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통은 시작되는 거다, 쉼은 죽는다는 거야,

그렇다면 '평화로움'이라는 것도 죽음의 한 부분인 것 아닌가'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거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지,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삶이란 살아 있는 내내 무언가를 추구해야 것, 그것이 무엇이던.

어떤 사람에겐 남을 돕는 일일 수도 있고, 장애를 가진 어머니에게는 그 자식을 끝까지 돌보는 일일 수도 있지,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이고 삶의 의미일 테니까'


'살면서 그것을 알아낸 사람도 있고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야.

아는 사람에게 그것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만 모르는 사람은 괴로울 테지'


'사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매일매일 그것을 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로 힘들어할거야.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실존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을 떨쳐버릴 수가 없겠지'


'그러나 누구든 막상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오면 자신에게 물어보겠지,

자신의 삶이 어떠했냐고'


'아름답고 즐거웠어, 난 내가 누군지 알아냈고 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냈지,

이제 영원한 평화의 쉼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테다.

조금씩 부족한 건 많았지만 후회 같은 건 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허무한 인생이었다, 큰돈을 벌었지만 술과 여자에 빠져 쾌락을 쫏았지.

그땐 즐거웠는데......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이제 죽게 되었다.

왜 살았는지도 모르고 너무 후회스럽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고 똑같은 평화와 쉼을 선사한다. 불안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쉼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고통과 불안과 갈등들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들이 바로 '나'를 인식하게 하고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었으므로,

나무가 천국까지 자라려면 그 뿌리가 지옥에까지 닿아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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