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엄마~! 어떡해~ 바퀴 벌레 아니야~?”. 소리를 지르고 기겁을 하며 아내는 순식간에 뒤로 오더니 어깨를 와락 끌어안았다. 무서워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내 어깨를 끌어안은 아내의 두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고 등에 바짝 기댄 얼굴에선 향기로운 체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나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뭐야~덩치가 산처럼 더 큰 사람이 이렇게 조그만 곤충을 무서워하다니”. 하며 대범한 듯 이까짓 곤충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몸을 천천히 움직이려 했다. 사실은 나도 곤충을 손으로 만지지 못한다. 길을 걷다 어쩌다가 몸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기겁을 하며 손으로 쳐낸다.
이 반갑지 않은 곤충은 주인이 집을 비운 틈을 타고 들어와 따뜻한 보온밥통을 점령하고 그 밑에 깔아놓은 천으로 된 깔개(?) 밑에 몰래 진을 치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적들을 무찌르기 위해 휴지를 가지러 일어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순식간에 도망가고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아내를 보면서 다시 말했다. “그런데, 이거~ 돈벌레야~~, “집에서 돈벌레 나오면 부자 된다는데, 우리 금방 부자 되겠다~!”. 나는 신경 쓸 것 하나도 없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었고, 아내는 바퀴벌레를 직접 본 적은 없는지, 아니면 내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나중에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갈 때까지 나는 이 사실을 비밀로 했고 나의 이 선의의 거짓말은 아내의 평온을 지켜 주었다.
이후에도 수없이 바퀴벌레가 출몰하였지만 이 집에 사는 동안 아내는 더 이상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대에 부풀었던 것 같다.
원효대사가 썩은 물을 마신 뒤 일찌감치 깨달음으로 일갈하셨다. “일 체 유 심 조"(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 이 말에 대한 나의 깨달음은 다음과 같다. ‘바퀴벌레 보기를 돈(벌레) 보듯이 하자!’ 궤변일 수 있지만 어차피 세상은 공식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결혼 후 나는 다세대 주택 반 지하에서 살았다. 다아아몬드 반지는 없지만 신혼의 단꿈을 꾸던 곳! 온몸의 체온을 느끼며 꼭 껴안고 자던 곳. 집 뒤로는 논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앞쪽엔 작은 골목들과 비슷비슷한 주택들이 모여 있었다.
퇴근 후나 휴일엔 아내와 손을 잡고 논밭 둑길을 따라 산책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집은 3층짜리 다세대 주택 맨 끝 집이었다. 아내는 이 집을 몸서리치게 싫어했다. 30분만 누워 있어도 퀴퀴한 냄새와 축축하고 음습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바퀴벌레를 비롯한 온갖 벌레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방 위쪽엔 폭이 좁고 길쭉한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일렬횡대로 늘어선 쇠창살이 창문 밖에서 거만하게 지키고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그 낡은 창문으로 물이 새어 들어와 방이 물에 잠길 것 같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오물이 뒤범벅된 물을 마시며 죽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창밖에 모래주머니를 미리 쌓아 두었고 비가 오는 날에는 혹시 방안으로 물이 들어올까 염려되어 밤 잠을 설치며 밖을 살피곤 하였다.
나는 물난리에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오랜 기간 저지대 상습침수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홍수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