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분들께서 직장생활 관련 어떤 내용들을 궁금해할까 생각하면서 컴퓨터 파일들을 뒤적거렸습니다. 과거 제가 연구소와 공장을 총괄해서 맡고 있을 때 팀장들과 구성원들에게 전체 메일로 보냈던 편지들이 있네요. 인원이 많아서 한 명 한 명 대면 소통이 쉽지 않아 구성원들과 가끔 이렇게 소통을 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글이 괜찮으시다면 몇 개 더 공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From: 안재혁(AHN JAE HYUK)
Sent: Thursday, June 01, 2017 9:08 AM To: Electronics R&D Center; OOOO공장
Subject: ktx에서 6번째 단상입니다
제가 어릴 적엔 무궁화 통일호 비둘기 열차 이렇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새마을호도 나오기 전 그땐 통일호도 비싸서 비둘기 열차를 타고 수원에서 대구역까지 12 시간 걸려 대구 외갓집에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참 신기했었지요. 열차가 달릴 때 분명 난 가만히 있는데 열차 밖 풍경들이 막 달리며 움직이는, 그리고 정거장이란 정거장은 모두 멈추어 참으로 길고 지루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ktx로 한 시간 반이면 갑니다. 살기는 더 편해졌지만 아날로그 감성적 낭만이 그리워집니다.
문득 인생도 사랑도 다 기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가만히 있는데 우리 인생은 열차 밖 풍경이 움직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잘도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때 정거정이란 정거장 모두 정차하며 느리고도 지루하게 달리던 기차가 지금은 한정거장 한정거장 모두 쉬어가며 살펴보면서 천천히 가는 삶처럼 느껴집니다.
"저 달이 노숙했던 지난 온 세월 눈물 없이 말할 수 있나~ 인생 고개 시리도록 눈물이 핑돌고..... 달빛처럼 별빛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게 인생이더라" 트로트 노래 소리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귓가를 때리며 감성을 자극하네요~
위로 갈수록 폼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더 고독해집니다. 하나를 얻으려면 갖고 있던 하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조직장이 뭐라고, 그냥 조금 더 살았다는 것 외에 다 똑같은 생물체인데, 때때로 다른 사람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고 운명을 결정합니다. 이런 결정이 옳은 것인지 참으로 힘든 결정 앞에선 마음이 편치 않지만 조직이라는 명분 하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결정짓는 결정들을 해야만 합니다.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도 그렇고, 어제 날짜로 같은 식구로서 십몇년을 함께 일하던 한 사람이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저 성과자 프로세스에 따라. 팀장들과 함께 2년 동안 다양한 기회를 주며 무엇이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주위에서 뭐라고 얘기하든지 상관 안 하고요.
신이 있다면 왜 사람마다 역량의 한계치를 다 다르게 가지고 태어나게 했는지 묻고 싶어 집니다. 태어난 사람은 잘못이 없는데... 그 친구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것 외엔. 어떤 상황에 맞닦드려졌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면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가 달리는 속도로 나도 달려야 하는 게 인생이고, 정의롭게 사는 것과 자비롭게 사는 것 사이에서 매 순간 그런 결정들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냥 그냥 물 흐르듯이 물처럼 바람처럼 현재를 살아가고 싶어 집니다. 현재는 과거이면서 미래이기도 하고. 조직이란 것도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