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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블리오 Nov 20. 2023

불안정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를 읽고


민음사에서 출판된 <인간실격>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라는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20페이지 남짓 되는 짧은 작품이고,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유다의 머릿속에 밀려오는 생각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쓰여있다. 극과 극으로 요동치는 유다의 감정과 내적서술을 따라가는 것이 작품의 주를 이룬다.


이 작품은 인용문만 떼어서 보거나 부분적으로 쪼개서 읽으면 이 작품의 전율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작품 전체를 한 덩어리, 한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




이 작품에 대해 좀 찾아보니 ‘유다라는 인물에 대한 종교적인 해석’ 내지는 ‘다자이 오사무의 종교관’ 등 대부분 종교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적인 시점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나는 이 작품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인간의 내면을 밑바닥까지 끄집어내서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등장인물과 플롯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지만 이는 내용 전달을 위한 장치일 뿐이고, 이 작품에서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병적인 자기 합리화로 점철된 유약한 한 개인의 내면 심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작품이 그렇게 와닿았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린다”라는 식의 비뚤어진 마음.


“당신은 언제나 옳았어. (...) 당신은 언제나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어. (...)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졌는데. 단연코 나는 변했어! 나는 깨끗해졌어. 내 마음은 달라졌는데. (...) 그러자 그 비굴한 반성이 금방 추악하고 시커멓게 부풀어 오르면서 (...) 에이, 틀렸어. 어차피 나는 틀렸어. 팔아먹자. 팔아서 저 사람을 죽이자. (...) 이렇게 예전의 결심이 되살아나고 저는 이제 완전히 복수심에 사로잡힌 악마가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p.154~156)


죄책감과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불안감 등을 떨쳐내기 위해 유다는 미친 듯이 자기합리화를 쏟아낸다. 말하자면 유다의 미성숙한 방어기제이다.


대상에 대한 감정이 너무나도 커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거절당하거나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유다는 변명과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진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러다 또 다시금 자기합리화에 빠져버린다. 본인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이는 모습이다.




이 작품 속 유다의 “대상”인 예수는 유다에게 그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의 머릿속에 예수는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아름답고 순수한 존재’였다가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은 존재’가 되기를 반복한다. 유다의 본심은 전자였으나 일그러진 내면 속에서 후자로 그려진 것이다.




이 작품은 “제 이름은 장사꾼 유다, 헤헤, 갸롯 유다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예수를 사랑하고 있다는 진심을 고백하는 유다의 모습, 그리고 예수를 팔아버린 뒤 자신은 그저 장사꾼이라는 자기 비하와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음 짓는 유다의 모습이 대비되어 애처롭게 느껴졌다.


익살스러운 웃음이 아니라 처절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실소였을 것이다. 괴로움에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처럼.


“나는 조금도 울지 않아. 나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아. 처음부터 티끌만큼도 사랑하지 않았어."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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