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 시간에 맞춰 갔더니 한산했다.
낯선 공간이 주는 무거운 공기가 나를 엄습해 온다.
코로나 때문인지 창구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바로 내 차례가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직원 앞에 앉는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아기띠 안에서 방긋방긋 웃어주며 떨리는 엄마의 긴장을 풀어준다.
"어떻게 오셨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저.... 아이 주식 계좌 만들려고요."
말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떨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창구 직원은 안고 있는 아이를 보고 "아이가 너무 예뻐요."라고 말을 건넨다. 그 다정한 말에 얼어 있던 몸이 조금 풀어진다.
"제가 미리 알아보고 준비한 건데 이것만 있으면 되나요?" 준비한 서류와 아이 도장을 내민다. 직원은 훑어보더니 더 많은 서류를 내민다. 내미는 서류에 내 사인과 아이 도장을 찍어 대며 거의 한 시간 만에 끝나고 간단한 상담을 거쳐 아이의 증권 계좌가 만들어졌다. 엄마, 아빠도 없는 주식 계좌를 아이가 먼저 가졌다.
펀드로 간접 투자는 해봤지만 직접 주식계좌를 만든 건 처음이다. 처음 하는 주식투자에 아이 계좌라니 무모하기도 용감한 결단이었다.
2020년 3월 이든이의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1월부터 뉴스에 등장한 코로나 소식에 설마 3월쯤이면 좋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입학날이 가까워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그 후로 3년을 발목 잡히게 될지는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단지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입학은 계속 미뤄지고 그나마도 아이랑 잠깐씩 하던 외출도 못하게 되어 갑갑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뉴스는 혼란스럽고 사람들의 두려움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며 혼돈의 시간이었다.
아이를 안아 재우며 눈은 볼륨도 없는 tv 뉴스 자막을 읽고 있었다. 그 순간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 '모든 뉴스와 소문들로 불안한데 주식 시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그 생각이 왜 떠올랐는지 지금도 신기할 노릇이다. 아이를 눕히고 한 번도 틀어 본 적 없는 경제 채널을 찾아 틀었다.
무슨 얘기인지는 이해가지 않았지만 한 남자가 화면 가득 그래프를 띄어 놓고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격양됐고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는 "지금 여기 지지선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 지지선은 여기인데" 하는 순간 그래프는 더 떨어져 그분이 말한 지지선이 무너지고 그래프가 떨어졌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심각한 상황인 거는 분명했다.
코로나로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친 날이었다. 2020년 3월 19일.
'어디가 끝인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혼돈의 시간 지금 주식을 사놓고 기다려 정상화가 되면 폭락 직전까지는 회복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 주식을 사자! 마음을 먹었다.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설득하기를 며칠, 우리는 당장 쓸 돈이 아닌 아이의 돈으로 주식을 사자고 결정했다. 처음 하는 주식투자에 시간의 여유가 있는 아이돈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돌이 안 된 아이를 안고 사람들의 접촉이 덜한 개점 시간에 증권사를 찾았다.
아이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과 양육수당으로 부은 적금을 타서 아이 주식계좌로 옮겼다.
그런데 진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는지, 매수, 매도 주문은 어떻게 넣는 것인지, 샀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아이의 돈이다 보니 액수보다 더 큰 무게감이 느껴졌다.
'고민할 시간에 공부다'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경제 관련 거의 모든 유튜브를 다 뒤진 것 같다. 그중 몇 개는 지금도 꾸준히 보는 채널을 만난 게 행운이었다. 조금 감을 잡고 책들을 주문해서 읽고 경제 신문을 구독했다. 수험생 모드였다.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의 무게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하루 종일 아이랑 있어야 하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저녁 먹고 정리를 미치면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유튜브 채널을 정주행 했다.
그렇게 두어 달 지난 5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주식을 매수했다. 아이의 돈이니 만큼 수익률보다 안전한 코스피 대형주와 애플 테슬라 주식을 조금 나누어 샀다.
주식을 사놓고 너무 떨려서 매일 주식창을 열어봤다. 처음 하는 일에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급기야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고 잠을 줄여 공부를 하고 거기에 불안까지 더해지니 몸에 무리가 갔다. 다시 한번 투자의 의미를 되뇌었다. 투자의 원칙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 까지 지키는 투자의 원칙이 생겼다. 공부해서 아는 것에만 투자한다.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들을 만들어 갔다. 그 후 2020년 8월 가지고 있던 현금 일부를 더 투자하며, 코로나로 힘든 시기 자산의 증가를 맛볼 수 있었다. 이때 얻은 것은 투자 수익금이 아니라, 아끼고 저축하는 삶에 투자라는 한 부분을 더 했다는 것이다. 투자를 생활로 끌어들이며, 많은 것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더불어 주식을 공부하다 보니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아이의 미래도 계획하는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공부하는 엄마로 거듭났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시작된 주식 투자의 길이 나와 가족의 변화를 이끌었다.
아이는 내 삶의 방향을 알려주고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끈다. 이든이는 나의 가장 큰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