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개월 어린이집 입학을 앞둔 2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주변을 저녁마다 산책하며 이야기를 한다.
"이든아, 이제 여기서 친구들하고 선생님하고 놀 거야. 친구들하고 놀면 재밌겠다."
말똥말똥한 얼굴로 무슨 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예, 예..."연신 대답을 넙죽넙죽 잘한다. 떨리는 것은 엄마뿐이다.
아이를 잠시 보내놓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와 새로운 환경에 아이를 적응시켜야 한다는 걱정이 한 데 석여 마음이 복잡하다. 마음의 준비만 몇 달째, 하지만 코로나로 입학 날짜는 계속 미뤄진다. 한 달 남짓 지난 3월 마지막 날부터 등원이 결정됐다.
아침부터 두근 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과연 아이는 잘 지낼 수 있을까?
'적응은 잘할 수 있을까?'
'울면 어떻게 해야 하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기어 다닌다.
2시간 동안 어린이집 생활로 아이의 사회생활이 시작된다.
코로나로 보호자가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문 앞에서 아이를 떼어 놓아야 한다.
아침을 먹이고 기저귀와 물품을 어린이집 가방에 챙겨 집을 나선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체 따라나선다.
어린이집 앞에 다다르니 내 가슴은 벌벌 떨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의 불안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려 본다.
신발장 앞에서 선생님이 기다리신다. 아이는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나에게 안긴다.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분위기를 읽은 듯하다. 얼굴을 내 가슴에 파묻은 채 온몸의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선생님의 설득과 엄마의 불안한 눈빛이 뒤섞인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좀 더 수월하게 적응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원망스럽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은 처음부터 난코스다.
아이에게 내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아이를 선생님 품에 넘겨주고 어린이집을 빠져나왔다.
엄마가 뒤돌아 가는 모습에 아이가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이집을 빠져나온 후에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괜히 보냈나, 너무 일찍 보냈나, 그냥 데리고 있을걸, 내 욕심에 아이를 힘들게 하나' 이런 생각들을 머리에 담고 주위를 맴돌 뿐이다.
때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 역시 불안한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남편은 아이보다 내 걱정이 더 많았다. 마음이 약해져 아이를 데리고 나올 거 같았단다.
어린이집 주위를 돌면서 꾹꾹 삼켰던 울음이 남편의 "괜찮아?" 란 말에 터져 버렸다.
꺽꺽 울면서 "내가 잘못했나 봐, 이든이가 우는데 내가 뒤돌아 나와 버렸어, 아이가 상처받았으면 어쩌지" 겨우 말을 이어가며, 목놓아 울었다. 아이를 떼어 놓는 게 마치 내 사지를 찢어 놓는 거 같았다. 그동안 아이에게 어린이집 가는 연습을 하고 엄마랑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 아이를 위해서 한 행동들이 사실 아이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를 위한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아이의 적응보다 엄마의 상황인식이 먼저여야 했다. 남편과의 통화를 끝내고도 어린이집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2시간 정도를 주위를 맴돌았다. 그때 선생님의 문자가 왔다. 아이의 사진과 잘 지내니 안심하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아이는 부은 눈에 뚱한 표정으로 장난감 놀이를 하는 사진을 보는데 또 눈물이 터졌다. 그렇게 전쟁 같은 두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데리려 다시 어린이집으로 갔다.
이틀 같은 두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아이를 안고 서로를 달랬다. 아이에게 묻는다. "내일도 어린이집 갈 건데 어때?" 대답이 없다. 일단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아이는 일주일 정도 울음으로 엄마랑 헤어지는 의식을 치르며 적응을 해 갔다.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적응이 필요한 건 엄마인 나였던 거 같다. 아이를 품에서 내려놓을 준비는 아이가 커가는 속도와 같이 가는 거 같다. 어린이집 입학으로 조금 내려놓았고 앞으로 몇 번의 이런 과정을 치러야 한다. 아이는 엄마의 생각보다 의젓하고 씩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