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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Dec 29. 2023

나는 잔인한 것도 미친 것도 아니었다 -<나사의 회전>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22번. 

  




    헨리 제임스의 작품으로 영화 <디 아더스>의 모티프가 된 소설입니다.  고딕적 분위기와 흡인력 강한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심리학자들에게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포 바이블입니다. 제목과 달리 '나사'라는 단어는 두 번밖에 등장하지 않고,  세 명의 화자(narrator)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유령 이야기와 다른 플롯으로, 모호함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 더글러스의 말 >> -  자신의 옛친구이었던 가정교사의 회고 기록을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  난 무척이나 동의해요.  (···) 그토록 여린 어린아이에게 맨 먼저 유령이 나타난 게 각별한 기미가 있다는 거 말이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어린아이와 관련된 감칠 듯한 이야기치고 그게 처음 일어난 건 아닐거예요.  만일 어린아이 하나가 나사를 한 번 더 죄는 효과를 낸다면,  어린아이가 둘일 경우 어떻게 되겠어요? (···) 그 얘기는 글로 남겨져 있어요.  자물쇠를 채운 서랍 속에 넣어져 몇 해 동안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거든요.  


 *  그 여자에게 앞날은 다소 음울하게 느껴졌어요.  젊고 경험도 없는 데다 신경질적이었거든요.  책임이 막중하고 말을 나눌 사람도 적고, 실로 엄청나게 외로울 거라는 상상이 들었죠.  









<< 가정교사의 시선 >> -   유령으로부터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가정교사입니다.   '회고 기록' 속 주인공으로 자신의 기이한 경험을 소설의 액자구조 안쪽에서,  전체 화자(narrator)의 입을 빌려 이야기해줍니다.  



  *  나는 분명히 이전의 군색한 생활에서 비롯된 교훈 가운데 하나가 아닌 뭔가를 배웠다.  그건 즐거움을 얻고, 심지어 남에게 그것을 베풀며, 내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  사색이란 감미롭지 않은가.  아!  내 상상력과 섬세함과 약간의 허영심,  다시 말해 나의 내부에 깃든 가장 예민한 기질이 결국 모든 것에 대한 함정이 되고 말았다.  이 모두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길은 단지 내가 방심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  요컨대 나는 자신을 비범한 젊은 여자로 상상하였고,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리라는 믿음에 위안을 얻는다고 말하련다. 그렇다면 이윽고 최초의 정조를 던질 놀라운 일들에 의연히 맞서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  나는 날마다 문을 닫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건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신경질적이었다기보다,  그렇게 될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  내 심장은 놀라움과 공포로 한순간 멎어버렸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맨 먼저 일순간 아이로부터 온갖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  유령도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 나는 맹렬한 자신감이 작열하는 가운데,  한순간만이라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으면 적어도 당분간은 그 유령과 대결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느꼈다.  








 *  아이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고,  이번에는 촛불을 끄고 뭔가 바라보거나 응답하는 듯이 덧문 뒤를 헤치고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지난번엔 그렇게 못 했지만 지금은 뭔가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다시 불을 켜거나 서둘러 슬리퍼를 신고 덧옷을 걸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데서 입증되었다. 


  *  ··· 동화 속에 빠져 있는 체하면서도 아이들은 죽은 사람의 환영을 열심히 쫓고 있어요.  (···) 그 아이들은 죽은 사람들을 얘기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소름 끼치는 일을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미친 것 같겠죠.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할 노릇이죠.  


  *  우리는 매 순간 황급히 중단해야 하는 대화에 영원히 갇혀,  막혔다고 생각한 골목길을 급히 빠져나와 보니 우리가 경솔히 열었던 문이 쾅하고 닫혀버린 듯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었다. 







 *  유령들이 괴롭힌 탓에 나는 이따금 틈을 내어 혼자 틀어박혀 내가 요점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소리 내어 뇌까려 보았다.  그건 환상적인 위안이자 새로운 절망이었다.   (···) 내가 무엇을 보았든 마일스와 플로라가 더욱 많은 것을 보았다는 잔혹한 생각은 정말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  "그 여자가 저기, 저기 있잖아요!"  지난번과 똑같이 건너편 둑 위에 제셀 양이 서 있었던 것이다.   (···) 그 여자는 거기 있었고,  내 말은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다시 말해 그 여자가 거기 있었기에 나는 잔인한 것도,  미친 것도 아니었다. 


  *  "당신은 우리처럼 분명히 저 여자가 보이지 않아요? 지금은 안 보인다고 할 테죠. 지금도 그래요?  저 여자는 타오르는 불길처럼 거대한데!  보기만 하세요. 보기만!"   부인은 그때 내가 하듯 바라보다 부정과 반발과 연민이 깃든 한숨을 쉬며,  힘닿는 데까지 나를 돕겠다는 태도를 취해 내게 감동을 주었다. 








 *  그나마 내가 지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연의 섭리'에 비밀을 털어놓고 내 편으로 삼아,  내가 겪은 엄청난 시련을 유달리 불편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결국 소박한 인간 덕목의 나사를 다시 한번 죄도록 공공연히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노력도 인간의 본연,  즉 자연의 힘을 모조리 동원하려는 이런 노력보다 더 벅찬 건 없었다. 


  *  그는 우리를 엄습한 거대한 존재를 도무지 찾지 못한 채 당황하여 새파랗게 질려 나를 쏘아보았다.  "그분이 오셨나요?"


  *  아이는 심연으로 떨어진 동물의 울음소리로 부르짖었다.  (···) 나는 분명히 그를 잡고 껴안았다. 내가 무슨 열정으로 그를 잡았는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윽고 나 자신이 껴안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고요한 날 실내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악령을 쫓아낸 그의 여린 심장은 고동을 멈추어버린 것이다.












 



                                             <페이지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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