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49번.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알랭 레네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협동 작품입니다. 동명(同名)의 영화가 개봉된 다음 해인 1960년에 발간된 이 책은 시나리오와 소설 등 여러 장르의 글쓰기가 혼합된 작품입니다.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과거의 히로시마와 평온한 풍경의 현재 히로시마의 모습이 교차로 표현되어집니다. 작가는 기억과 망각의 도시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엄청난 재앙을 겪고도 여전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이야기해줍니다.
<< 시놉시스 >>
* 세상 어디서나 사람들은 만난다. 중요한 것은 늘 일어나는 이런 만남들 이후에 이어지는 일이다.
* 흔한 이야기, 매일 수없이 일어나는 이야기. 일본 남자는 기혼, 아이들이 있다. 프랑스 여자도 기혼이며 역시 아이가 둘 있다. 그들은 하룻밤의 연애를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히로시마에서.
<< 그의 말 >> - 사십 대 기혼남으로 엔지니어입니다. 큰 키에 언뜻 보면 프랑스 남자처럼 보일 정도로 서구적인 외모이지만 바람둥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별이 정해져 있는 스쳐 지나가는 만남임에도, 프랑스 여자와 진실하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아무것도. (지문 - 다리가 잘려나간 개. 사람들. 어린아이들. 상처들. 화상을 입고 울부짖는 아이들)
* 오늘 또 보는 건 다시 만나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금방 다시 보는 건 누구를 다시 만난다고 할 수 없어요. 정말 다시 만나고 싶어요.
* 몇 년 후, 내가 당신을 잊었을 때, 그리고 지금 우리 이야기 같은 일들이 또 그렇게 다시 일어나게 될 때, 나는 당신을 사랑의 망각 그 자체로 기억할 겁니다. 나는 끔찍한 망각을 생각하듯 이 이야기를 생각할 거예요.
* 당신을 떠날 수가 없어요. 히로시마에 나랑 같이 있어요.
<< 그녀의 말 >> - 평화에 대한 영화를 찍으러 히로시마에 온 프랑스 여배우로 32세입니다. 우연히 만난 일본 남자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첫사랑이었던 독일 병사가 눈 앞에서 죽었고, 적군과 사귀었다는 이유로 삭발당한 채 지하실에 감금되었던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기억을 차츰 망각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합니다.
* 생존자들도 봤고, 히로시마 여자들의 배 속에서 살아남은 태아들도 봤어요. (지문 - 예쁜 아이 하나가 우리 쪽을 돌아본다. 그러자 그 아이 눈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보인다)
* 또 반복될 거라는 것. 사망자 20만 명. 부상자 8만 명. 구 분 만에. 공식 수치가 그래요. 또 반복될 거예요. (지문 - 나무들. 교회. 회전목마. 재건된 히로시마, 평범한 모습) 지상 온도가 1만 도에 이를 거예요. 만 개의 태양이 있는 것 같겠죠. 아스팔트가 타오를 거예요.
* 사람들이 그런 일을 감히 하려 들었다는 게······ 경악스럽고······ 그 일을 정말 해냈다는 게 경악스러웠어요. 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공포의 시작이기도 했죠. 그리고 또 무관심, 무관심에 대한 공포이기도······
* 사람들 무리가 내 머리 위에서 나를 밟고 가요. 머리 위에 하늘이 아니라······ 그렇죠······. 사람들이 걸어가는 게 보여요, (···) 그 사람들은 내가 지하실에 있는 걸 몰라요. 내가 죽었다고, 느베르에서 멀리 떨어진 데서 죽었다고 돼 있는 거죠. 아버지한테는 그게 더 나았어요. 내가 몸을 더럽혔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게 더 나았던 거예요.
* 하루가 다 지나고 밤이 새도록 나는 그의 시신 곁에 있었어요. (···) 내 몸 아래에서 그는 점점 차갑게 식어 갔어요.
* 세상이 우리 앞에 내놓는 이런 난관들을 가끔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완전히 숨이 막혀 버릴 거예요.
* 당신은 완전히 죽은 게 아니었어. 우리 이야기를 했어. 오늘 저녁, 처음 본 사람이랑 같이 보내고 당신을 배신했어. 우리 이야기를 해 줬지. 그 이야기가 말이야. 말해지더라. 십사 년 동안을 다시 찾지 못했는데······ 불가능한 사랑을 하려는 마음. 느베르 시절 이래로.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는지 지켜봐. 내가 어떻게 당신을 잊었는지 지켜봐. 나를 지켜봐.
* 지나간 그 옛날을 애통해하는 것 외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거예요. 시간이 흘러갈 거예요. 오직 시간만이. 그리고 시간이 오겠지요. 시간이 올 거예요. 우리를 이어 주는 것이 무언지 우리가 더 이상 그 이름을 댈 수 없게 되는 시간이. 그 이름은 우리의 기억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갈 거예요. 그런 다음 완전히 사라지겠지요.
* 당신을 잊을 거야! 벌써 잊고 있어요. 봐요, 얼마나 잘 잊는지! 보라고요!
<< 부록 >>
* 프랑스의 어딘가, 어느 날 오후의 끝 무렵, 한 독일 병사가 지방의 광장을 가로질러간다. 전쟁조차 일상이 된다. 독일 병사는 태평한 표적처럼 광장을 가로지른다. 사람들은 (···) 이제 적군들을 더 이상 경계하지도 않는다. 전쟁이 아주 익숙해진 것이다.
* 전쟁은 끝이 없었다. 내 젊음도 끝이 없었다. 나는 전쟁에서도, 젊음에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 내가 12시에 루아르 강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직 완전히 숨을 거둔 상태는 아니었다. 강가 공원에서 누가 총을 쏜 것이었다. 하루가 다 지나고 밤이 새도록 나는 그의 시신 위에 엎드려 있었다. 다음날 사람들이 와서 그의 시신을 트럭에 싣고 갔다. 바로 그날 밤 도시가 해방됐다. 생라자르 성당 종소리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 내 첫사랑이었다고······.
* 그녀가 -히로시마에서- 그 일본 남자에게 내어 주는 것,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현재 시점의 그녀 표현을 따르자면, 느베르에서 자신의 사랑이 죽고도 살아 남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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