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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May 06. 2024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 어렵습니까? - <검은 책1>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97번.









   인간이 자신으로 사는 것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책입니다.  이 작품은 사건과 칼럼이 교차로 연결되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다음은 작가 오르한 파묵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갈립은 뤼야와 제랄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둘 사이의 각별함을 질투하게 되지요.  또 한편으로는 제랄을 숭배하기도 하고요.  이리하여 그는 아내를 찾는 동시에 제랄이 쓰는 칼럼을 읽으며 그의 행방을 추적하지요.  갈립은 이 둘을 추적하는 가운데 모든 이스탄불의 고고학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  작가의 시선 - 제랄 중심으로 >> - 어느 날 사라진 유명한 칼럼니스트 제랄의 칼럼입니다.


   *  칼럼에 모든 계층, 모든 계급,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문제를 과감하게 다룬 후로 독자들에게서 흥미로운 편지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 이렇게 하여 우리는 터키에서 마네킹 제작업이 지하로 밀려난 끔찍한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  장인 베디는 그 새로운 환상에 걸맞는 마네킹을 만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이상한 포즈로 서 있는,  웃는 모습도 각양각색인 유럽산 마네킹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그는 죽을 때까지 십오 년 동안,  환상이 살과 뼈로 변형된 무시무시한 국산품,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 작품인 마네킹을 150개가 넘게 만들었다.  우리 신문사에 와서 나를 아버지의 지하 제작실로 데리고 간 아들은 마네킹들을 하나하나 다 보여 주면서,  우리를 '우리'이게 한 '본질'은 이 이상하고 먼지 쌓인 작품 속에 묻혔다고 말했다. 


  *  이 마네킹,  이 가련한 창조물에는 사람을 바깥의 밝은 세계로 밀어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건 공포나 두려움,  슬픔이나 어둠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도 관찰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 그들 부자가  '터키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보고(寶庫)' 라고 했던 제스처,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몸동작들은 비밀스러운,  어떤 보이지 않는 대장의 명령으로 천천히,  동시에 변하며 사라져 갔다.  무엇을 모델로 삼았는지 알 수 없는 새로운 행동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  이 마네킹 무리도 밀폐되고 곰팡내 나는 이 지하실에서 나와 함께 지상으로 나가, 햇빛 아래서 다른 사람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모방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열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그를 모방하면서, 어느 날엔가 그가 된다는, 최소한 그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간다. 


  *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른다. 


  *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해,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해.  왜냐하면 나 자신이 되지 못하면  '그들이'  원하는 내가 될 것이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그런 사람을 견뎌 낼 수 없으며 ,  그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느니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더 나으니까. 











<< 작가의 시선 - 갈립 중심으로 >> - 갈립은 변호사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내와 그의 이붓오빠인 제랄을 찾아, 이스탄불 전역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  갈립은 곁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베개에 파묻은 머리를 볼 때면,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의 푸른빛과 이발사가 할아버지 목에서 풀어 그의 목에 묶었던 보자기의 푸른빛이 똑같이 불안감을 안겨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내가 떠나던 날 아침, 갈립은  (···) 초록색 볼펜을 생각했다.  그날 밤,  뤼아가 자신을 떠나며 남긴 편지를 검토하면서,  갈립은 편지를 쓴 초록색 볼펜이 이십사 년 전에 바다에 떨어뜨린 볼펜과 똑같다는 것을 기억한 것이었다.  


  *  뤼야는 돌아올 거라는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뤼야는 세 낱말로 된 문장으로 갈립을 공범으로 만들었다.  "가족들에게 잘 말해!"  그녀가 집을 떠나는 이유를 분명한 형태로 자신에게 떠넘기지 않아서 고마웠고, (···)  갈립에게 한 약속도 세 낱말이었다.  "네게 곧 연락할게."  그는 밤새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  갈립은 이십사 년 전에 휩싸였던 초조감을 느꼈다.  그가 놓쳐 버린 삶의 작은 조각은 어디에 있는가?   (···) 그들이 함께한 삼 년 동안의 결혼 생활 내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세계의 삶의 즐거움과 유희를 놓치는 데에 불만스러워하는 듯한 사람은 갈립이 아니라 항상 뤼야였다. 


  *  제랄의 칼럼은 사실 새로 쓴 것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 한 번 게재되었던 것이다.  이는 제랄이 오랫동안 신문사에 새 글을 보내지 않았다는 명백한 신호인 동시에, 다른 무언가의 숨겨진 신호도 될 수 있었다.  칼럼 중간에 나오는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 어렵습니까?'  라는 질문도,   (···) 글 밖의 세계에 있는 다른 숨겨진 의미를 지적하는 듯했다.  갈립은 이 문제에 대해 제랄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했던 기억이 났다.  제랄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대상이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의 본질적 특징을 알아채지 못하고,  (···)  최악의 것은,  글의 나머지 대부분에 내포되어 있는,  바로 코앞에 보이는 그 확연한 의미와,  약간의 인내와 지능만을 요하는 숨겨진 우연적 의미도 인지되지 못한 채 신문이 내던져진다는 사실이야."


  *  우리는 모두 장님이 되었다. 우리 모두, 우리 모두······.










*  갈립은 뚱뚱하고 거대한 몸, 부드러운 시선,  작은 손을 한 제랄 마네킹 앞에서 한동안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한 번도 나 자신이 되지 못한 건 전부 당신 탓이야!  나를 당신이게 한 그 모든 이야기를 믿은 건 모두 당신 때문이야!'  (···) 갈립은 이 남자를 사랑하고 또 두려워했다.  제랄과 함께 있고 싶었고, 또 도망치고 싶었다.  그를  찾고 있었고,  또 그를 잊고 싶었다.  (···) 제랄 마네킹은 납으로 만든 군인처럼 좌우로 천천히 흔들렸다. 


  *  '그들은 이제 나를 다른 것들의 표시로 보고 있어!'  하고 갈립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들어가고 싶은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라, 제랄이 단어들로 그려 낸 세계였다.  제랄은 이야기를 가지고 이 세계의 물건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을 살게 한 다음,  그 자신이 숨는 곳이 되어 열쇠를 숨겼다.  


  *   갈립은  '나는 다른 사람이야' 하고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 제랄의 현관문 위에는 그 어떤 신호도 이름도 없었다.  (···) 세상의 혼란스러운 질서를 발견해 버린 것처럼, 열쇠가 자물쇠 구멍에 딱 들어맞았다.  



                                                                                                       <2권으로 이어집니다>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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