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A군 산재 체험기!
짠돌이 A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농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 A는 동료들 중 제일 부자라고 소문이 났다. A는 돈을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추가근무수당을 위해 휴무일에도 일을 할 정도로 짠돌이다. 가끔 “나 돈 많이 벌 거예요”라고 습관처럼 말하는데, 말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고 몸도 빠릿빠릿해서 직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의 스물다섯 살 A는 상투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이다. 긴 머리를 상투모양으로 바짝 틀어 묶고 일터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무사(武士)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항상 에너지가 넘쳤던 A에게 왼손 검지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증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료와 돼지 등을 옮기는 반복적인 작업이 원인인 듯 했다. A는 한 달 여 동안 쉬는 날마다 치료를 받으러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녀보았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고 손가락은 계속 펴지지 않으니 A의 얼굴에 수심이 쌓여 갔다. 총기로 가득했던 커다란 눈에도 걱정만 담겨 갔다. 결국 종합병원에서 CT촬영까지 하고나서야 <좌측 제3중 수지절구 수장판 손상>이라는 병명이 밝혀지게 되었다.
수술비가 백만 원까지도 나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A는 큰 걱정에 빠지고 말았다. 수술만 하면 괜찮아 지는 거고, 농장에서 불입하고 있던 산재보험신청도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A는 차라리 본국에서 수술하는 게 비행기 값 더해도 한국보다 싸다며 당장 출국을 하겠다고 했다. 돈을 알뜰살뜰 모아가는 A였기에 한국의 수술비 금액 단위가 부담으로 다가갔을 듯 했다. 산재보험적용이 될 거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A가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상태로 본국으로 떠나는 상황이 될까 마음이 불편했다.
다행히 얼마 후 산재적용이 확정되었다. 수술은 비교적 간단했고 결과도 좋게 나왔다. 병원에서 받아온 서류들을 내게 건네며 A가 고개를 저어댔다. “너무 모르겠어.”
의사소통정도의 한국어 대화와 문자만 가능한 A가 서류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듯 했다. 그동안의 통원 치료비와 수술비, 그리고 휴업급여 등의 신청서류들이었다. A를 대신해 서류들을 정리해 팩스로 보내자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나도 A가 좋지 않은 상황으로 한국을 떠나지 않게 되어 안도가 되었다.
수술 후 A는 휴업급여를 받는 기간이니 현장일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손목까지 붕대를 감은 상태로 농장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쉬라고 해도 답답하다며 기숙사와 사무실 앞 주차장에서 재활용쓰레기들을 정리하고 마당을 쓸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상처가 덧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해도 긴 머리를 파대처럼 늘어뜨린 채 바지런을 떨었다.
한 손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머리를 묶어 올려 상투를 틀지 못해 A의 머리는 길게 풀어헤쳐진 상태였다. 하얀 붕대가 감긴 손을 처 든 채 검은 머리카락을 미역같이 늘어뜨리고 비질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고무줄을 챙겨들고 “묶어줄까?” 했더니 이럴 때라도 긴 머리로 있고 싶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제 잘 펴진다고 하면서 붕대 끝 쪽으로 나온 손가락을 꼼지락대어 보이며 환히 웃었다.
얼마 후 A가 근로복지공단에서 보내온 <통원치료비와 수술비, 휴업급여 입금 예정>문자를 캡처해 보여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왔다. 그동안 매달 보험료를 불입했던 거니까 받아도 되는 거라고 했더니 그래도 공짜 돈이 생긴 거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공짜 돈으로 뭐 할 거야?” 물었더니, 부모님이 모두 편찮으셔서 오랫동안 병원에 계신다고, 송금하는 돈은 거의 병원비로 들어가서 많이 모으진 못했다고, 그래도 부모님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괜찮다고 하더니, “나 돈 많이 벌 거예요”라며 씩 웃었다.
지금 A는 완쾌되어 훨씬 더 밝은 표정으로, 훨씬 더 바지런을 떨며 일하고 있는 중이다. 짠돌이 A에게 파이팅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