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엄마 권명자씨를 불러본다 -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놀이공원을 거닐고 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며 놀이기구 쪽으로 엄마를 잡아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아주며 사랑스럽게 본다.
회전목마를 타며 아이가 “엄마~~~”하고 부른다. 아이의 엄마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소풍날, 아이는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자랑스럽게 펼쳐놓는다. 친구들이 탄성을 지르며 모여든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김밥을 입에 넣고 야무지게 오물대며 먹는다. 그리고 괜히 으쓱해서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거야” 자랑 한마디를 펼쳐놓는다.
아이가 첫 생리를 하던 날 엄마는 아이 볼처럼 새빨간 장미꽃다발을 안겨준다. 아이가 자라 결혼을 하게 되고 아기를 낳자, 아이의 엄마는 친정엄마가 되고 외할머니가 된다.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든 아이는 친정엄마와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티격태격 싸워가며, 조잘조잘 시끄럽고 재미있게 살아간다.
상상에서 깨어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미소가 지어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다시 눈을 감고 엄마를 기억해내려 애써본다. 그러나 떠오르는 건 단 한 장면뿐이다. 하얀 상여와 울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 “꽃 예뻐~” 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이다.
이 기억을 오빠,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정리해보면, 그때 나는 두 돌을 한 달 앞두고 있었고,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 나를 낳고 누워 지내던 엄마가 돌아가신 거였고,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애들 불쌍해서 어쩌나.” 혀를 끌끌 찼고, 젊은 아내를 떠나보낸 아버지는 슬픔에 빠져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상여를 붙들고 울고 있던 여자는 할머니였으며, 언니와 오빠 손을 잡은 채 마루에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내가 상여 위에 가득한 하얀 종이꽃들을 가리키며 “꽃 예뻐~”라고 말한 거였다.
영화의 한 컷처럼 선명한 이 장면이 실제 기억인지, 전해 들은 이야기로 재편집되어 기억처럼 남아있는 것 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엄마라는 단어를 만날 때면 유일하게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기억과 이야기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져 마치 사진처럼 내 의식 속에 선명하게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다시 눈을 감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엄마를 만나려 애써 본다. 그러나 “엄마~ ” 굵직한 목소리에 현실로 되돌아오고 만다. “밥 남았죠?” 돌멩이도 씹어 먹을 기세로 두 아들놈이 시커멓게 난 다리털을 휘날리며 다가온다. 밥 먹은 지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밥솥을 또 열어 제친다. 양푼에 남은 반찬 때려 넣고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입이 터지게 먹던 둘째 놈이 한마디 한다. “엄마도 한 숟갈?” 순간 <엄마> 소리가 송곳처럼 날아와 박힌다.
엄. 마.
나도 엄… 마… 내 엄마 권 명자 씨를 조용히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