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미역국을 듬뿍 떠서 입에 넣었는데 딱딱한 무언가가 씹히었다. 백화점 식당가에 있는 미역국 전문점이었다. 부들부들한 미역과 통통한 조갯살이 뚝배기에 담겨져 나오는데, 맛이 일품이어서 자주 찾는 집이었다.
오른쪽 어금니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 밀려왔다. 눈물이 핑 돌 정도였지만, 볼을 싸매고 한참 동안 통증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내용물을 조심스레 살펴 보니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무언가가 보였다. 조개껍질 같기도 하고 작은 돌멩이 같기도 했다.
주방아주머님이 조개껍질 끝에 최고로 딱딱한 부분인 거 같다며 사과를 해 왔다. 사진을 찍어둘까 하다가 괜히 유난 떠는 것 같아 관두었다. 당장 일어나서 나오기도 그렇고 해서 왼쪽 이로 조심스레 몇 숟가락 떠먹었다. 계산을 하려니 여직원이 음식 값을 받지 않겠다며, 만약 이가 더 아프면 치료비를 내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어금니 쪽에서 미세한 통증만 느껴지기에 괜찮다며 계산을 했다.
그 후 오른쪽 어금니에서 가끔 미세한 시큰거림이 느껴져 왔다. 그러나 예전에 금으로 씌운 아래쪽 어금니가 충격을 받았을 거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시큰한 통증이 차츰 늘어갔지만, 시골 집 건축 때문에 서울과 지방을 오가느라 치과 가기는 계속 미루어졌다. 기분 나쁜 시큰한 통증은 더 심해져 갔고, 결국 몇 달 후에서야 치과를 찾게 되었다.
“혹시 심하게 충격 받은 일이 있지 않았어요?” 엑스레이를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의사가 물으며, 오른쪽 윗 어금니 두개에 작은 금이 가 있다고, 당장 인조 이로 덮어 주어야 하고, 금이 간 부분으로 염증이 번질 가능성이 크며, 발치(拔齒)까지 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발치’라는 단어에 억울한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올라왔다. 당장 식당을 찾아갔다.
처음부터 치료비를 받을 생각은 아니었다. 발치까지 가게 된다면, 거액의 치료비를 받는다고 한들, 어린아이들처럼 이가 새로 날 수도 없을 터였다. 식당 주인에게서 형식상의 사과 말이라도 들어서 치밀어 오르는 억울함을 좀 달래 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 직원도 주방 아주머니도 바뀌어 있었고, 사장님께 전달해드리겠다는 말을 듣고 보름이 지나도록 사과 전화는 오지 않았다.
식당으로 다시 찾아가 성질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치료가 급했다. 금이 간 이가 더 벌어져 염증이 생기기 전에 빨리 치료해야만 했다. 신경 치료를 끝내고 임시 이를 덧씌우는 단계에 접어들 때 까지도 식당 쪽으로부터 사과전화는 받지 못했다. 차츰 화가 부글부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올려버릴까? 한바탕 난리를 피울까? 억울함은 어느덧 ‘화남’으로 바뀌어 갔다.
결국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조언으로 고객센터를 통해서야 식당 주인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을 대비해 음식점들마다 보험을 넣고 있다. 그동안 주인도 바뀌었고, 분점(分店) 오픈 준비에 정신이 없다. 보험회사에서 처리해 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사과의 말은 없었다. 보험회사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며, 치과 내원 기록과 의사 소견서, 엑스레이 사진, 결재한 카드내역 등을 까다롭게 요구해왔다.
그리고 이 두 개 값으로 이 백 만원을 제시해왔다.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치아를 상실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 어이가 없었다. 보험회사와의 긴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그 사이 신경 치료를 끝낸 오른쪽 위 어금니 두 개에 하얀 보조 이가 덮어씌워졌다. 한여름에 털모자를 쓴 듯 답답했다. 게다가 음식물을 먹을 때마다 치실을 사용해야만 했다. 워터 픽까지 써가며 칫솔질을 해도 영 찜찜하고 불편했다.
내가 이런 불편을 감수하는 동안에도 식당 주인은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 보험처리는 잘 되었는지 연락 한번 없었다. 억울함에서 화남으로 바뀌어가던 식당 주인에 대한 내 감정은 이제 분노로까지 치달아가고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시간은 흘러가 주었다.
차츰 덮개를 씌운 어금니에 적응되어갔다. 보험회사와도 오백 육십 오 만원으로 마무리를 했다. 이미 금이 가버린 어금니들은 발치까지 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보듬어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식당주인에 대한 분노의 감정도 차츰 사그라지고있었다.
분노는 어느덧 <전 주인이 있을 때 일어난 일이고, 보험회사에서 처리해줄 터이니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겠지, 분점 준비에 바빠서 겨를이 없었겠지>라는 너그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두 개의 인조(人造) 이를 받아들이고 나니, <이해>가 선물처럼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