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이방인>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세계문학전집 266번.

by 이태연



<< 뫼르소의 독백 >> - 이 소설은 주인공 뫼르소의 수기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주검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죠. 죽음도 인간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덤덤해 합니다. 장례식 다음날엔 직장 동료였던 여자와 잠자리까지 합니다. 건달친구 레이몽과 놀러가게 된 해변에서 뫼르소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아랍인에게 총을 겨누게 됩니다. 살인자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뉘우칠 줄 모르는 부도덕한 인간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고, 그때부터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맙니다.



* 뜨거운 햇볕에 뺨마저 달아오르고 땀방울이 눈썹에 맺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날처럼 특히 머리가 아프고, 이마의 모든 핏줄이 피부 밑에서 지끈거리고 있었다.


* 그 햇빛의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나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며, 한 걸음 몸을 옳겨 보았자 태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바로 그때였다. 모든 것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 바다는 답답하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하늘은 활짝 열리면서 불을 쏟아내는 듯했다. 나의 온몸이 긴장하면서 나는 총을 힘 있게 거머쥐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고, 권총 자루의 미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나는 태양과 땀으로부터 벗어났다.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특이한 침묵을 깨뜨린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쓰러진 몸뚱이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짧은 네 마디의 소리인 듯했다.




햇살 따라 무지개




*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별로 효과도 없는 일이어서, 나는 귀찮아져 그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 처음에 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가령 바닷가로 가서 물속에 뛰어들고 싶은 욕망이 생기곤 했다. 발 밑의 풀에 부딪히는 첫 물결 소리, 물속에 몸을 담갔을 때의 촉감, 그리하여 느끼는 해방감, 그러한 것들을 상상할 때 나는 감옥의 담벼락이 얼마나 나를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는지를 느꼈다.


* 과거를 되새기는 방법을 알고 난 뒤로는 심심해서 괴로운 일도 없게 되었다. (중략) 그처럼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무관심했던 것, 잊어버렸던 것들을 기억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단 하루만 산 사람이라도 백 년쯤은 쉽사리 감옥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추억할 거리가 있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렇게 잠을 자고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신문 기사를 읽는 동안 빛과 어둠이 잦아들고 시간은 흘렀다. 감옥에 있으면 시간관념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러한 것이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 못했다.




무지개 꺾이다




*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동시에 짧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를 보내기는 물론 길었지만, 어찌나 길게 늘어나던지 하루하루가 넘쳐서 서로 겹치고 마는 것이었다. 세월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내게는 어제 그리고 내일이라는 말만 의미를 잃지 않았을 뿐이었다.


* 검사는 나의 넋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사실 나에게는 넋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으며, 인간다운 점이 조금도 없고, 인간의 마음을 유지하는 도덕적 원리가 나와는 모두 인연이 멀다는 것이었다.


*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런데도 실상은 모든 것이 매우 단순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나는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도 오래전부터 나를 따르던 그 소리가 멎을 때가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 사람이란 아주 불행하게 되는 법은 없는 거라고 어머니는 가끔 말씀하셨다. 하늘이 빛을 내며 새로운 하루가 나의 감방으로 새어 들 때 나는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빨주노초파남보




* 결국 서른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중략) 요컨대 그것은 지극히 명백한 일이었다. 지금이건 10년 후이건 나는 죽을 것임엔 틀림이 없었다.


* 마찬가지로 내가 죽은 뒤에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관계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결국 무슨 일에서든지 사람이란 나중에 익숙해지고 마는 법이다.


* 그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의 의견으로는 우리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말년에 어머니가 왜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주변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을 것이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어머니는 자유로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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