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월 : 설레는 OT와 장천동 투어, 웰컴디너와 방 정하기
나는 겁이 원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예전엔 이곳저곳을 혼자 잘만 돌아다녔었는데. 나이와 함께 그새 겁도 늘어버렸나 보다. 갓 스물 넘었던 나는 일주일의 일본여행에도 작은 배낭 하나 메고 갔었는데 지금은 온갖 마음을 다 먹고 24인치 캐리어와 배낭, 작은 캐리어 하나를 꽉꽉 채워서 겨우내 순천에 내려왔다. 심지어 캐리어 끌고 경의중앙선을 타고 용산역에서 내려서 KTX를 타고 순천으로 오는 동안 몇 명의 눈치를 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천에 오는 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내리 움츠려 들었다.
나는 오늘부터 바로 이곳, 순천 장천동에서 8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한달살이를 시작하려 한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과연 이게 잘한 선택이었을까? 순천을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 물음들은 순천역에 내리고 나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설렘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마 둘 다 일 거 같긴 하지만, 내 심장은 도통 쉬지 않고 있다.
나는 순천역에서 내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버스에 탔다. 내가 머물 숙소의 전 정거장은 아랫장 시장이었는데 그곳에서 어른들이 나처럼 짐을 한 아름 안고 타셨다. 다들 앞을 보고 앉지 않고, 옆을 보고 앉아서는 서로서로 이야기하셨다. 내가 살던 곳의 버스에선 조금만 큰 소리로 통화해도 서로서로 눈치 보고 인상을 찌푸리긴 일쑤였는데. 나는 어쩌면 공공예절이야말로 정 없고 짜증과 피로로만 가득 찬 사람들이 만든 규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에도 그 안의 계신 어른들은 내가 캐리어를 내리는 그 긴 시간 동안 보챔 한 번 없이 가만히 기다려주셨다. 그 덕에 나는 내 캐리어를 차분히 버스 아래로 내릴 수 있었다. 과연 서울의 버스에서도 그럴 수 있었을까? 뭐가 정말 상대를 위한 배려일까. 버스 안에서 대화하지 않는 것? 아니면 사람이 무거운 짐을 차분하게 내릴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 모르겠다. 하지만 버스에 내리고 난 후 내 마음은 한결 편해져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같이 한 달을 지내게 될 사람들로 추측되는 분들이 계셨다. 먼저 인사를 하긴 그래서 황급히 짐만 두고선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골목길과 신호등 앞에도 그런 분들이 계셔서 황급히 그 길을 빠져나왔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거 같다. 아직 만남의 시간까진 조금 남아있었고, 그 어색함을 견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오느라 모든 기력을 다 쏟았기에 남은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 카페에서 20분 간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모임 시간에 거의 딱 맞춰서 도착한 파랑새 창고엔 이미 다른 분들이 인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만 더 일찍 와서 말을 터볼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다들 조금은 안면을 텄는데 나만 거기서 아직도 낯선 이었다. 먼저 말을 건넬 용기가 없어서 책상 앞에 놓인 명찰과 단체복, 그리고 선물들과 다과만 만지작 거렸다. 다행히 어색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뒤에 어떤 남성분이 황급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랑새창고에 참가자 9명이 다 모였다. 나 포함 여자 7명, 남자 2명이었다. 대표님과 인솔자님을 포함하면 11명이었다. 순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기획하신 대표님은 앞에 나가서 순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할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가 무얼 하러 이곳에 왔는지, 우리가 지낼 장천동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어떤 프로그램을 하게 될 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부제는 '일상의 작은 자극'이고, 테마는 '오롯이 쉬고, 오롯이 경험하고'였다. 그러니까,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 되는 거였다. 결국, 그게 '리추얼'이라고 했다. 결국 리추얼이란 게, '일상의 다양한 순간을 의식적으로 바라보며 나를 더 알아가며 건강한 성장을 위해 행하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책상 앞에 놓인 '리추얼북'을 완성하는 것, 그리고 한 달 동안 총 8개의 게시물을 sns에 올리는 것뿐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였다. 여러 다른 지역들에서도 비슷한 한 달 살기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이렇게 참여자 개인의 성장에 집중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항상 주가 되는 건 지자체의 홍보였다. 이곳만 그랬다. 마냥 집을 떠나고 싶어 다른 한 달 살기 지원사업을 알아보던 내가, 이 사업을 발견하고 신청해서 선정까지 된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너무 간절했던 시기에, 내가 바라고 있던 것들을 주는 프로그램이 눈앞에 딱 나타났을까? 대표님도 이번 기획은 본인에게도 도전이라고, 새로운 시도라고 말씀하셨다. 개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최대한 주기 위해서 단체 활동을 최소로 줄이셨다고도 말씀하셨다. 실제로 첫 주차를 제외하면 주에 2-3번 정도의 단체활동만 예정되어 있었다. 확실히 부담이 적었다.
단체 프로그램비는 모두 무료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중엔 조식 포함 두 끼가, 주말엔 조식만 제공이 될 거며, 그래서 단체 프로그램이 없는 날에도 점심이나 저녁은 다 같이 먹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숙소는 2명, 2명, 3명 이렇게 쓸 거고, 방 배정은 저녁 식사시간에 할 거라면서 이야기를 마치셨다. 그 후에 참가자들 간 서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원래 했던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면서 다음 챕터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모두 일상에 지쳐서 이곳으로 온 거 같았다. 그리고 나처럼 뛰는 게 취미인 분들이 꽤 많아서 반가웠다. 또, 소개 중에서 노잼이면 죽는다는 분과 특이한 게 좋아서 개명까지 했다는 분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모인 사람들의 사정만큼이나 나이도 다양했다. 25살 친구가 막내였고, 35살 언니가 맏이 었다. 난 두 번째로 어렸다. 동갑은 없었다. 언니, 오빠, 동생들과 친해져 본 경험이 없어서 걱정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인솔자님의 '한 사람도 소외되는 일 없도록 하겠다'는 말도 날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소개를 마치고 나선 도시재생팀분들이 장천동을 소개해주셨다. 도시재생팀은 한달살이 프로젝트의 조력자이자 최종보스 같은 존재였다. 어찌 되었든, 이 프로그램이 기관의 지원을 받고 진행되는 거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도시재생팀분들의 복장을 보면서 순천의 공공기관은 생각보다 자유롭고 열려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이 추진될 수 있었을 거 같다. 소개를 들으면서 몽미락센터, 장천노랑극장, 차차루, 파랑새창고를 둘러봤다. 새로 지어진 티가 나는 건물들엔 사람이 없었다. 문을 잠가 놓은 곳도 있었다. 잘 만든 건물들이 제 용도를 다 하지 못하고 낭비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도시재생팀의 소개말에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OT를 했던 파랑새창고는 한 달 동안 한달살이팀의 아지트로 사용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널찍한 그 공간이 9명을 위한 거라니, 너무 좋았다. 공용서재인 몽미락 센터보다 이곳이 더 좋아 보였다. 틈틈이 글을 쓸 때에 이곳을 오면 딱 좋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매번 카페에 갈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한편에 마련된, 우리가 가져온 책들로 만들어진 공유책장도 맘에 들었다. 책을 사랑하는 나에겐 작지만 소중했던 책방이었다.
그다음으론 우리가 한 달 동안 지내게 될 '스테이두루'를 소개받았다. 방을 둘러보기 전에, 사장님은 웰컴키트와 초콜릿을 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선, 숙소 안내사항에 대한 말을 들었다. 사장님은 우릴 위해서 침대도 바꾸고, 서랍장도 두 개씩 새로 들이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옥상 테라스는 공사가 아직 마치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셨다. 정말이지, '스테이 두루' 소개글에서 본 글과 똑 닮은 분위기의 사장님이셨다. 숙소 로비처럼 베이지의 따듯한 색이 사람이 된다면 그럴 거 같았다. 로비에서 숙소 소개를 받고, 기다리던 방 투어를 시작했다. 돌아본 숙소는 따듯하고 아늑해 보였다. 남자 두 분은 206호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남자가 두 명이라 선택지가 없었다. 여자 7명은 2인실인 306호와 307호, 3인실인 308호를 쓰게 되었다. 3인실은 생각보다 넓고 쾌적했다. 그래도 3명이 들어가기엔 살짝 좁아 보였다. 2인실을 둘러봐도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살 짐들을 모두 풀고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저녁 먹기 전에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파랑새창고로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무던히 애써봤는데 잘 안 됐다. 내 옆에 계신 분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색했던 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순천에서의 첫 식당은 '이스타'라는 양식집이었다. 오전 내리 긴 길을 멀미하며 내려온 터라 양식이 끌리지 않았다. 다행히, 인솔자님이 식당 측에 양해를 구해 보쌈도 따로 사다 두셨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눈앞에서 음식이 식고 있는데 남자분 한 분이 보이지 않았다. 들어보니,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러닝을 하러 가셨다고 했다. 모두가 그분을 기다리며 뻘쭘히 앉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그분도 돌아오셨다. 술은 각자 돈으로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하이볼을 한 잔 시켰다. 그때 같이 하이볼을 시켜 먹은 분이 누구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여하튼, 그렇게 하이볼을 마시면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밥은 많이 식었지만 상관없었다. 난 찬 음식도 곧잘 먹는 사람이라 정말 상관없었다.
드디어 룸메이트를 정할 시간이 되었다. 그전에 자신에 대해 어필할 기회가 주어졌다. 긴장해서 그런 건지, 긴장이 조금 풀려서 그런 건지, 하이볼을 마신 취기가 올라왔다. 그래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내가 지금 취했음을 알려주고 내 소개를 시작했다. 나는 정리가 되어있는 걸 좋아해서 그런 분이면 좋겠다고, 그리고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소개를 마치고 짧게 있었던 질문시간에 여러 질문들을 했다. 나름의 용기를 낸 거였다. 그렇게 모든 차례를 마치고, 정말 룸메이트를 정하는 시간이 돼버렸다. 인솔자님은 방을 같이 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목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두 분은 통했는지 바로 서로를 지목했다. 거기에 어떤 한 분이 거기 껴서 3인실을 써도 되냐고 물었고, 그렇게 3인실을 쓸 사람들이 확정되었다. 문제는 나를 포함 네 사람이었다. 네 사람 다 지목하지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때 난 내가 정리를 너무 강조해서 말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자 우리 넷은 그냥 뽑기로 방을 정했다. 아침형 인간이신 분과 저녁형 인간이신 분이 307호 방을, 나와 막내분이 306호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내 룸메이트가 된 분은 처음 보자마자 왠지 못 친해질 거 같았던 사람이었다. 남은 한 달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그 의문이 점점 더 짙어지는 하루였다.
숙소에 돌아와서 각자 방에 짐을 풀었다. 우리 방이 된 306호는 창고 바로 옆,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방은 아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다 모든 게 안 풀리는 날이었다. 짐을 어느 정도 풀고 나서 숙소 앞에 산책을 나가자고 룸메이트에게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 둘과, 어쩌다 보니 옆 방인 207호 분들과 짧은 밤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말을 몇 마디 주고받았었는데 그 내용은 기억나질 않았다. 신기하게도, 어색했던 그 밤날의 공기는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오늘은 모든 것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내가 같이 지낼 8명의 사람들, 머물 숙소, 숙소의 사장님, 그리고 이곳, 장천동까지. 나는 8명의 사람들과 함께 더운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장천동 골목골목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미아리가 떠올랐다. 따듯하다는 말보다 따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그런 동네여서 그랬다. 이곳은 키 작은 건물들이 어깻죽지 맞대어 있고, 새것의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우리 숙소로 들어오는 좁다란 골목엔 항상 맛있는 음식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심지어 숙소의 로비에서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순천을 정말 좋아하게 될 거란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 왔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거의 집과 방, 그리고 동네 근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지냈다. 경기도의 불편한 대중교통은 내 생활공간을 아주 좁은 구역으로 한정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웃음도, 웃는 법도, 농담을 하는 법도, 누군가와 친해지는 법도, 대화하는 방법도 다 잊어가고 있었다. 분명 나는 재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사람이었는데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에 어떤 농담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게 확연히 느껴졌고, 그게 너무 싫었지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점점 차오르는 늪에 발이 묶여서 내 목까지 잠기는 걸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한 마음에, 이 일상을 바꾸고, 내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여기에 왔다.
나는 할 수 있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나 같은 사람이 단체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모두에게 민폐인 건 아닐까? 모두의 즐거운 추억 속에 내가 오점으로 남는 건 아닐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동시에 궁금하다. 권태롭고 재미없고 설렘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서, 이곳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내일의 아침이 버거운 게 아니라 설렘이 될 수 있을까? 과거의 나를, 일상의 낭만을 알던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활력 있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개운하게 잠에 들 수 있을까? 시간을 꾸역꾸역 버티는 게 아니라 알차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까? 나도 즐겁게 웃을 수 있을까? 남은 시간들을 장담하지 못하는 채로,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던 첫날밤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