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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3. 상대를 위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5월 29일 수 : 상사호, 낙안읍성, 와온해변, 첫 번째 옥상파티




오전_동천 러닝


순천 동천 (순천교~정원역)



나와 룸메는, 새벽 5시 20분에 룸메와 함께 숙소 앞 5분 거리에 있는 동천으로 갔다. 다리를 건너려 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주민 분이 "저기 똥 있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정말 거대하고 정직한 모양의 똥이 길 한가운데 있었다. 순천분 들은 정말 무심하게 다정한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우리가 똥을 밟지 않도록 일러주시는 그 마음이라니. 덕분에 우리의 상쾌한 기분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 거대한 똥을 밟았으면 필시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테니까. 우린 그 똥 사건 덕분에 동천에 진입하기도 전에 배를 잡고 웃었다. 여기 와서 복근운동을 하지 않아도 복근이 생길 것 같았다. 



동천에 진입해서 나는 내 페이스대로 뛰어갔고, 룸메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어갔다. 우린 당연히 길이 하나이기에 내가 돌아올 때 마주칠 줄로만 알고선 서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곳에 도착했을 때에야 비로소 룸메친구한테 전화를 했다. 그때 당시, 내 룸메는 아무것도 모르고 정원역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되돌아 뛰어가도 룸메가 보이지 않았을 때 연락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룸메를 찾아 다시 정원역 쪽으로 뛰어갔고, 룸메는 털레털레 숙소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다 '외계인도 놀러 오는 순천국가정원'의 마스코트인 우주선 앞에서 내 룸메를 다시 만났다. 너무 반가웠고, 이 상황이 그저 웃겼다. 숙소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그렇게 아침 동안 걸은 게 무려 10km였다. 그런데도 아직 아침 8시가 안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린 그날 사이좋게 조식을 두 그릇씩 먹었다. 





스티커사진과 306호의 목표들



그러고 나니 또 힘이 나서 중앙동으로 향했다. 역시 사람은 밥 힘인가 보다. 항상 무기력하고 힘 없이 늘어져 있기 일쑤인 내가 아침 운동을 그렇게 하고도 힘이 남아돌아 다시 산책을 가는 걸 보니 말이다. 우리의 목적은 중앙시장 쪽에 있는 황금로 패션가에서 여름모자를 사고, 그쪽에 있는 다이소에서 돗자리를 사는 거였지만 결국 스티커 사진만 찍고선 돌아왔다. 뭔가 대단한 포즈들을 미리 짜놨지만 전신이 나오게 카메라 설정하는 걸 계속 실패해서 결국 얼굴 사진만 두 장이나 찍고 왔다. 그리고 그 옆은 우리 방만의 한 달 동안 목표를 정해놓은 거였다. 우리 둘 다 공교롭게도 길치라서 항상 길을 헤맸던 터라 지도 안 보고 집을 찾는 게 우리 일 순위 목표였다. 그리고 둘 다 티백을 잔뜩 가져왔는데 집에 다시 가져가긴 싫었으니 다 먹고 가자는 게 두 번째 목표였다.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웃을 일이 끊이지 않은 걸 보아 정말 둘이 코드가 잘 맞았던 거 같다. 





오후_상사호/낙안읍성/와온해변


상사호_상사이야기(돈까스)



12시 15분, 상사호로 가기 위해 우선 '반보기 공원'에 모였다. 원래라면 '벽오동'이라는 보리밥 맛집을 가려했으나 하필 그날이 정기휴무였던 탓에 급히 각자 다른 음식점을 찾아보다가 '상사이야기'라는 돈가스집으로 가게 되었다. 근데 이 돈가스가 정말로 맛있었다. 고기도 딱 알맞게 두꺼웠고, 튀김도 바삭했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소스였다. 직접 만든 돈가스 소스는 너무 달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새콤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샐러드 소스도 다른 곳과는 다르게 옥수수의 고소함이 풍겼으며 찐 고구마는 촉촉해서 물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돈가스 위에 올려먹으면 마치 고구마 돈가스를 먹는 듯했다. 물론, 가장 놀라웠던 건 12000원에 저 정도 크기였던 거다. 저 돈가스를 남김없이 먹은 건 나와 지원언니가 유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부터 10km를 뛰고, 중앙동 산책까지 갔다 왔더니 돈가스를 몸에 넣는 즉시 바로 몸에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써지는 게 느껴졌다. 내 몸이 일하는 걸 이렇게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는 거였다니. 신기했다. 나만 맛있게 먹었던 게 아니라 모두 맛있게 먹었다. 얼마나 맛있었냐면, 이다음날, 다음날의 다음날까지도 모두 돈가스가 맛있었다며 아련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 정도쯤 되니 오히려 벽오동이 휴무일이었던 게 다행이다 싶었다. 우연이 가져온 행운이 아니었을까? 



사실 원래 가기로 했던 집이 휴무였을 때, 처음으로 든 감정은 짜증과 실망감이었다. 인솔자님이라면 휴무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며 바로 다른 음식점을 알아보는 모습을 보면서 내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 거 아닌 일이었다. 다른 음식점을 찾아가면 되는 거니까. 다른 사람의 실수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별 거 아닌 일처럼 유하게 흘려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나처럼 모두가 인솔자님의 실수를 비난하는 편을 택했다면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점심식사를 마칠 수 없었겠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날부터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획대로 되는 것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라는 걸 배웠다. 





마늘이(강아지)



밥을 먹은 후 다 같이 상사호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먼저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우릴 위해 자리를 비켜주셨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어쩌다 사진을 찍기 위해 키순으로 서게 되었는데 우리 팀원들 중에 최장신이 환희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날 룸메가 나보다 5cm가량 작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 둘 다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불만은 없었지만 더 크지 못한 아쉬움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환희언니를 보고 멋지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환희언니는 170cm이니까. 



사진 속 강아지는 마늘이라는 강아지인데 마늘밭에서 주워서 마늘이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당신께서 드시려 사 온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마늘이에게 주고 계셨다. 말로는 "가 버려"라면서 두 눈으론 마늘 이를 너무나 귀여워하고 계신 게 잘 느껴졌다. 그러니까 마늘이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소한 인연은 항상 우연에 기대 찾아오는 것 같다. 우린 다 함께 마늘이 와 할머니께 인사를 건네고 다시 낙안읍성을 가기 위해 차를 탔다.





낙안읍성에서 쌓은 돌탑, 와온해변에서 먹은 칠게빵



낙안읍성을 꽉 잡고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인솔자님 덕분에 우린 편한 길로 잘 둘러볼 수 있었다. 어디든 카메라만 갔다 대기만 하면 푸릇푸릇한 여름의 생기가 오롯하게 담겨서 모두 즐겁게 서로를 찍으며 포즈를 취했던 거 같다. 물론, 이 날 필름사진 찍기가 특별 미션이어서 더 그랬던 것도 있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식 사진작가는 세진오빠가 맡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은 낙안읍성에서 우리가 하나씩 쌓은 돌탑이다. 될까, 될까, 그랬는데 정말 되는 게 신기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마지막으로 낙안읍성에 나오기 직전 식혜 한 잔씩 사고선 다시 차를 타고 와온해변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 탓에 멀미를 하는 사람이 조금 생겼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와온해변이 너무 예뻐서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인솔자님이 나눠주신 칠게빵은 조금 맛없었다. 한참을 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은 유달리 조용했는데 모두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행복과 피곤은 아무래도 별개의 문제니까. 





낙안읍성에서 필름카메라로 찍은 단체사진



나는 이 날, 11시 무렵부터 오후 8시까지 8명의 사람들과 있으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우선, 작은 실수에 질타하는 대신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같은 실수여도 어떤 대응을 하는지에 따라 약간의 해프닝이 될 수도 있고, 하루를 망치는 최악의 첫 단추가 될 수도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다혜언니에게선 더운 날씨에도 언제나 다정한 말을 하는 법을 배웠고, 세철오빠에게선 자신이 챙겨 온 우산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법을 배웠다. 또 지원언니에게선 불편한 자리를 먼저 앉는 법을, 세진오빠에게선 인생샷을 찍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법을, 환희언니에게선 뒷 좌석에 앉은 사람을 위해 짐을 치우고 의자를 빼주는 법을, 혜진언니에게선 멀미가 심한 사람을 위해 앞자리를 비켜주는 법을 배웠다. 결국 모두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양보함의 미학을, 상대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방법을.





* 밤_숙소 옥상


밤에는 숙소 옥상에 모두 모여 맥주 한 캔씩 간단히 마시면서 서로의 연애사에 대해 허심탄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의 주제는 '내가 만난 개새끼들'이었다. 나와 룸메는 숙소 앞 '우리 슈퍼'에서 2000원짜리 새우볶음밥 하나와 숙소 사장님이 챙겨주신 총각무김치를 먹으면서 그 이야기들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방은 그 주제에 대한 에피소드가 없어서 방청객 모드로 있었다. 나중에 합류한 세진, 세철 오빠는 갑자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해서 꽤 당황스러워했다. 그래서 세철오빠는 본인이 모태솔로라는 거짓말을 했고, 나와 룸메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가 나중에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찌 되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여기까지 하고 나서야 우리의 긴 하루는 드디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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