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엄마

by 아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화를 나게 한 건 아이들이었지만, 화가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가고 나면, 그 화는 후회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다.

순간을 못 참고, 또.

격양된 시선이 누그러지자 고개를 숙이고 굳어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날 선 감정의 끝은 언제나 나를 찌르는 것이다. 화와 후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뒤엉킨 마음속 실타래가 복잡하게 내 속을 어지럽힌다. 나는 아이들이 이 마음을 눈치챌까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버렸다.


요즘처럼 친절하게 육아를 알려주던 때가 있었을까.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육아서와 육아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나는 영 어설프고 서툰 엄마,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실천에는 약한 이론형 엄마였다. 한 번도 좋은 엄마, 괜찮은 엄마, 잘하는 엄마였던 적이 없는 나는 자괴감과 괴리감 그리고 때때로 좌절감을 안고 살았다.


난 어른도 아니야, 엄마 자격도 없어.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말로 벌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알면서 왜 맨날 이러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나를 사방이 막혀 있는 벽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곳에 도달하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맨날은 아니잖아. 그럴 수도 있지, 뭐.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그 벽에서 나는 나를 몰아붙이는 감정 앞에 반항하듯 한마디 내뱉어 버렸다. 그러자 나를 몰아세우던 감정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나는 눈물을 쓱 닦아 내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난 것 같았다. 내 편에서 나를 대변해주는 '나', 이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나', 위로와 토닥임으로 손을 내밀어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초면의 '나'였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면 안 되는 것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고, 아는 것을 해낼 수 없는 자신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의 잘못과 실수에 관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한마디의 말로 자신을 알린 그 초면의 '나'는 억울하고 슬퍼 보였다. 처음으로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화가 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적어도 몇 번은 참고 좋은 말로 달래려고 한다. 그날도 그랬다. 하지만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자 인내심에 한계가 온 것이다. 그래서 큰 소리가 나갔다. 그렇지만 그 화가 아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만큼 엄청난 것도 아니었고, 그 한 번의 화로 아이들이 잘못되지도 않을 것이다. 화가 날 때 소리 지르지 않고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의 유일한 단점은 정작 화가 났을 때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나의 육아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육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소리 한번 질렀다고 나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괜찮다.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불도 안 켠 적막한 방 안에서 처음으로 공감과 이해의 손을 나에게 뻗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나는 나와 악수했다. 처음 느껴보는 낯설지만 그리웠던 토닥임, 미처 어른이 되기 전에 엄마가 되어버린 나에게 해주는 공감육아였다. 그러다 문득 나도 아이들처럼 자라야 하고 돌봐 주어야 할 육아 대상자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면, 나 역시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아이의 감정이 공감받아야 한다면, 나의 감정 역시 공감받아야 한다. 아이의 실패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면, 나의 실패도 나의 잘못은 아니어야 한다. 아이가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면, 나 역시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이다. 아이가 잘 자라야 한다면, 나 역시 잘 자라야 한다. 아이와 나는 동등하다.


아이가 지금 일곱 살이니 엄마로서의 나도 고작 일곱 살이다. 어설프고 서툰 게 맞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조바심은 내가 어른이라는 착각에서 온 것이다. 좋은 엄마, 다정한 엄마, 지혜롭고 현명한 엄마는 자라면서 만들어갈 이야기들이지, 내가 지금 되어있어야 할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라는 이름 앞에 붙는 모든 수식어를 빼기로 했다.


나는 그냥, 엄마만 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저 평범하고 행복한, 가끔은 놀라운, 때로는 슬프고 힘든, 그리고 어쩌다 마주하는 행운 같은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사는 가족이다. 거기서 나는 엄마이고, 아이들은 딸들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줌으로써가 아니라 곁에 있어줌으로써 위로가 되고, 살아갈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의미가 될 것이다. 아이들은 나의 아이들로서 있을 것이고, 나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있을 것이다. 가끔 안 좋을 때도 있겠지만, 대체로 사랑하며 서로의 곁을 지켜줄 것이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미숙함과 어리숙함을 고백할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딸! 엄마도 많이 어려, 엄마도 많이 틀리고, 엄마도 잘 못해. 그러니까 우리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자. 서로의 곁에서 서로의 지금을 보듬어 주면서 같이 살자, 같이 크자.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며 나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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