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눈부신 태양은 거리를 유난히 반짝거리게 합니다. 강한 햇살은 여전하지만 얼굴에 와닿는 공기는 제법 차가워졌는데요. 그야말로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얼굴을 들면 하나둘씩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뭇잎들이 눈에 띕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록이 무리 지어 강한 기세를 떨쳤었는데, 어느새 가을의 색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빨갛고 노란 색감이 주는 예쁨과 따뜻함은 괜스레 마음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여름이 내뿜었던 강한 에너지의 느낌과도 또 다르게 잔잔하게 마음을 물들이며 연한 미소가 지어지게 합니다. 그뿐인가요? 바람에 나부끼며 춤추듯 내려앉은 나뭇잎들은 거리를 알록달록 장식하며 참 예쁜 풍경을 만들어줍니다. 언제부턴가 가을은 봄만큼이나 설레는 계절이 되어 있습니다. 예전엔 낙엽을 밟을 때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마냥 쓸쓸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나뭇잎의 변해가는 색깔만큼이나 가을을 발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낙엽까지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낙엽이 주는 쓸쓸함과 가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적막한 느낌까지도 ‘분위기 있다’는 말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시선을 순간에 갖다 대면 숱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곤 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이 순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짧게 지나쳐 가버리는 이 계절을 놓칠 새라 지금도 가을을 눈에, 마음에, 글에 담고 있는 겁니다. 가을이 주는 청명한 맑음과 예쁨, 그리고 이 분위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습니다. 가을은 그럴만합니다.
여름에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을 충실히 마친 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합니다. 자신의 마무리를 이토록 아름답게 할 줄 아는 것이 근사하고 멋진 일이라는 걸 가을을 보며 배웁니다. 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강한 비바람을 이겨내며 자신을 지키고 자라게 한 강하고 짙은 초록은 후회 없이 자신을 모두 피어냈기에 미련 없이 자신을 떨굽니다. 그래서 가을은 어떤 아쉬움도 두려움도 없이 찬란하고 아름답게 서 있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후회도 미련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명을 내려놓는 가을의 모습은 전혀 쇠약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강한 초록이 주는 싱그러움의 희망찬 모습만큼이나 온 산과 거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모습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렇습니다. 어느 인생이든 한 번의 가을이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런 걸까요? 내가 맞이할 수 있는 그 한 번의 가을. 내가 그려낼 가을이 이토록 아름답고 눈부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고 싶어서 오늘, 지금 여기, 나의 여름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 집니다. 깊게 뿌리내린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를 비치는 햇살을 양분으로 받아내고 강한 비바람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키워내야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더 푸르고 싱싱한 잎들을 가지에서 더 많이 뻗어내고 싶습니다. 그럴 때 나의 가을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물들일 단풍도 많아질 테니까요. 후회 없는 하루들로 나의 시간을 채우고 싶습니다. 아쉬움 없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나의 가을도 아름답고 싶습니다.
인생이 저물어갈, 나의 가을은 어떤 풍경일까 궁금해집니다. 나를 스치는 사람들은 나의 가을에서 어떤 색깔과 어떤 공기를 느끼게 될까, 생각해봅니다. 청명한 하늘과 눈부신 햇살, 상쾌한 공기와 아름다운 가을빛. 나를 이토록 기분 좋게 해주는 가을의 거리에서 나의 가을도 지금 이 거리를 닮아 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래서 나의 가을을 걷게 될 사람들에게 두 팔 벌려 이렇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나의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