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 사이에 자그마한 풀들이 제법 눈에 띈다. 한번 눈에 들어오니 자꾸만 보인다. 저 작은 틈을 찾아 비집고 나온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올해 유난히 많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내 눈에 보이는 것일까. 예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알아서 내 눈에 와 앉는다.
주변이라 불리는 것들.
신경 쓰지 않아 없는 것처럼 지나쳤던 것들,
낮은 곳에 있어 미처 시선이 닿지 않았던 것들,
나에게 멀리 있어 그저 뭉뚱그려져 있던 것들.
내가 걷고 있는 주변의 풀들을 보며 지나간다. 주변의 풍경이 바뀐다.
풀은 그대로다. 풀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바뀌었다. 풀의 주변이 바뀐다.
나의 주변은 풀이고, 풀의 주변은 나이다.
풀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주변, 나는 고작 지나가버리고 마는 잠시 동안의 주변.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의 배경일까.
얼마나 많은 것의 주변일까.
얼마나 많은 것의 스쳐 지나감일까.
얼마나 많은 것의 이름 없음일까.
내가 숱한 사람들과 나무들과 풀들의 아무것도 아님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스산해진다. 서둘러 이 스산함을 치우고 싶어 걸을 때마다 보이는 풀들에 눈을 맞추고 풀의 삶을 짐작해본다.
풀은 자신을 세울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 잎을 피워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과 수고를 인내와 희망으로 견디며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보아주는 이 없어도 제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아무것도 아님에도 무엇을 하겠다고 설 자리를 찾고 발을 내밀어 보는 삶은 인정받아야 한다. 틈을 비집고 나와 빛을 보고 낮게나마 자신을 드러낸 저 풀은 더 이상 작지 않다.
나를 지나치는 발걸음들은 자신을 세울 자리를 찾으려는 치열한 한걸음이다.
자신의 것을 하겠노라 힘 있게 내딛는 한걸음이다.
비집고 올라갈 수 있는 틈을 찾는 간절한 한걸음이다.
세월을 견디고 오늘 여기에 살아있음을 증거 하는 강한 삶의 흔적이다.
나를 지나치는 주변은 더 이상 찰나가 아니다.
주변은 사소하지 않다.
나의 시선이 짧을 뿐,
나의 시야가 좁을 뿐,
나의 마음이 얕을 뿐.
틈을 찾는 치밀한 움직임은 풀이된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걸음들은 역사가 된다.
결코 가볍지 않은 걸음으로 걸어야겠다. 스치는 역사 앞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래서 깊게 보고,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나를 지나치고, 내가 지나치는 모든 주변의 것에게 숭고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기어이 좁은 틈을 비집고 올라온 저 한 포기 풀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