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다시 허리를 숙이실 당신께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by 아무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성실한 노동 앞에서는 두 손이 모아집니다. 노동은 그 형태와 상관없이 가치 있는 일이죠. 허리를 굽히고 이삭을 줍는 여인들은 땅에 떨어진 이삭에 눈을 두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입니다. 저 여인들의 수고로 한 가정은 안정된 생활을 가질 것이고 아이들은 자랄 것입니다. 평범한 여인들의 수고로 사회는 유지되고 발전할 토대를 갖게 되겠죠. 그림 속 마을의 평온함은 여인들처럼 오늘에 책임을 다한 사람들 덕분에 가능합니다. 이삭을 줍는 일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여인들이 흘린 고귀한 땀방울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어가게 해 줄 씨앗입니다. 그래서 허리를 숙인 채 손을 뻗는 여인들의 모습에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림은 순간의 모습을 담아내죠. 그렇기에 때때로 어떤 그림들은 그 이후의 장면을 상상하게 합니다. 이 그림이 그랬습니다. 숭고한 노동과 희생 후, 여인들의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를 그려보곤 하죠. 개인적으로는 저 허리가 반듯하게 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일 허리를 숙이고 일만 했을 테니 하늘 한번 볼 시간도 없었겠죠. 그러니 노동의 끝에서 허리를 펴고 하늘을 한번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땀으로 젖었을 노동의 흔적이 시원하게 위로받으면 좋겠습니다.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은 여인들의 몫입니다. 그날의 노동에 책임을 다한 여인들은 하늘의 한 조각을 그날의 보상으로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열심히 산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만날 수 있는 하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 다시 허리를 숙이더라도 괜찮을 수 있는 겁니다. 여인들이 살았던 그리고 살아야 할 고된 하루의 마지막은 보상과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하늘이어야 합니다.


여인들은 매일 허리를 숙일 겁니다. 하지만 허리를 숙인 모습이 여인들의 특징으로 굳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노동의 숭고함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느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비하하고 자신의 역할을 축소시키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과 노을이 걸린 하늘 같은 것들 말이죠.


우리는 저마다의 형태로 매일 허리를 숙입니다. 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 생계에 대한 책임, 사회인으로서의 기대감, 성과를 향한 중압감, 스스로에 대한 도전과, 안 되면 내 탓 같은 자녀 양육까지. 이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우리의 허리를 휘게 만들죠. 사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힘들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들 나만큼 살고 있으니까요. 원래 사는 게 이런 거니까요. 다들 감내하고 있는 삶. 그 평범한 삶은 우리의 수고를 별스럽지 않은 것, 보통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감당하고 있는 것을 힘들다고 말하는 건 다소 나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그치죠. 노력이 부족했고, 정신력이 약했다고, 어떤 날은 자기 관리를 잘 못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평범함이라는 무게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짊어지고 있다고 해서 축소돼야 하는 것도 아니죠. 평범함은 사회를 이루고 유지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평범함은 특색 없음도 아니고, 무미건조함도 아니며, 익숙하고 반복적인 그저 그런 날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평범함은 나와 타인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노동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사회는 그 많은 평범함의 반복으로 유지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함은 의미 있고 숭고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당신의 손이 가벼울 리 없습니다. 훗날 역사는 평범한 우리들이 보냈던 하루들의 의미와 가치를 빼곡히 기록할 겁니다. 이삭을 줍는 여인들이 오늘을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의 오늘이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자리를 지키며 감수해야 하는 많은 일들은 우리의 허리를 더 아래로 숙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이름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허리도 그만큼씩 내려갑니다. 점점 더 하늘 볼 시간은 없어지고 땅을 향해 눈이 고정되죠. 하늘도 잊어버리고, 허리의 통증도 잊어버리고, 땅 위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살 수도 있습니다. 이삭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삶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이삭을 줍는 일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더 이상 주울 이삭이 없어져 허리를 펴고 싶을 때는 이미 허리가 굳어져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람이 불어도 이마의 땀방울은 씻지 못할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늘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허리가 굳기 전에 매일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드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당신의 노동이 권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의 이삭 줍기가 매일 새로운 의미로 채워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의 수고로 여기서 잘 지내는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당신의 땅에 이삭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더라도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숭고함은 숙여진 허리에 있을 테지만, 여인들의 아름다움은 그림 이후에 허리를 펴고 걷는 모습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으십시오.


정당하게 노동하며 보통의 삶을 유지하는 삶은 가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 있는 일을 매일 해내는 당신은 고귀합니다. 오늘 각자 자리에서 빛나주신 분들께 하늘을 선물을 띄워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하늘은 파랗고 어떤 하늘은 붉을 테죠. 햇살에 눈이 부신 하늘과 별이 총총 빛나고 있는 하늘, 하얀 구름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하늘과 시원하게 비가 내리는 시원한 하늘도 있습니다. 어떤 하늘에는 새떼가 날아가고 꽃잎이 흩날리고 있겠죠. 고개를 숙이고 보는 땅에는 이삭뿐인데, 우리 가질 수 있는 하늘은 이렇게나 많습니다. 어떤 하늘이든, 하늘은 찬란하고 바람은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당신은 숭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흙은 당신의 손을 숭고하게 만들고 하늘은 당신의 얼굴을 아름답게 물들입니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신 당신께 하늘을 주십시오. 당신이 있는 곳에서 고개를 한번 드십시오. 하늘은 어디에나 있고 생각보다 참 좋습니다.


일생 허리를 굽히심으로 소중한 오늘을 물려주신 앞선 세대에게 존경을, 가족을 책임지는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를, 오늘도 버텨준 직장인들께 박수를, 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는 청춘들에게 정당한 미래를, 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그저 존재하는 것이 예쁨인 아이들에게 웃음을, 이삭을 줍는 모든 일상들에게 경의를,


그리고

내일 다시 허리를 숙이실 당신께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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