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밀레 <라 베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어머니의 자세는 굉장히 신중하고 정성스럽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낮음을 따라 등을 굽히고 어깨를 오므린 채 손을 뻗습니다. 아이의 입을 향하는 어머니의 눈에 맞춰 고개는 앞으로 숙여져 있습니다. 의자의 뒷부분이 들어 올려질 정도로 어머니의 몸은 아이에게로 향해있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최적의 자세로 자신의 불편함을 마다하며 어머니는 밥을 먹입니다. 아이 입에 들어가는 밥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숟가락을 향해 입을 내민 아이와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저 벌린 입으로 밥이 들어갈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은 기쁨과 뿌듯함으로 채워지겠지요.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마다 어머니는 아이의 벌어진 입으로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함께 담고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아이가 좋은 것만 보기를, 좋은 것만 갖기를, 좋은 날들로만 채워지기를. 어머니의 숟가락은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저 작은 밥 한 숟가락은 아이의 일생을 지탱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아이는 자기 입으로 들어온 밥의 온기를, 자신을 향해 있는 어머니의 각도를, 밥을 먹이려 분주한 어머니의 손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진심을 깨닫는 날, 세상의 어떤 두려움과 막막함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되는 겁니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사 남매의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뜨면 엄마는 김밥말이 안에 김밥을 꾹꾹 누르고 계셨지요. 김밥을 싸는 엄마 옆에서 주어 먹는 김밥은 더없이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김밥 꼬투리를 먹지 못하게 하셨어요. 아이들은 예쁜 것만 먹고 자라야 하신다면서요.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다들 가운데 김밥만 먹는 줄 알았지요.
그러다 어느 날 친구집에 놀러 갔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네 집에는 김밥이 있었죠. 친구 엄마는 김밥 꼬투리를 따로 담은 접시를 간식으로 가져가 먹으라고 하셨어요. 친구는 신나서 김밥을 먹자고 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김밥 꼬투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주는 친구 어머니와 그걸 맛있게 먹는 친구의 모습은 꼬투리는 먹어 본 적 없는 나에게 꽤 충격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이들도 김밥 꼬투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커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쁜 것만 주고 싶고 먹이고 싶어 하는 지극한 사랑을 엄마는 김밥 안에 담고 있었습니다. 예쁜 김밥만 골라 담아 도시락을 싸놓고 부리나케 출근길을 나서야 했던 엄마는 그 고된 시절 최선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던 겁니다. 가난해서 바빴던 엄마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정성 들여 만든 예쁜 김밥을 자식들 입에 넣어주는 것이었죠.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원대한 모성이 있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힘든 세상을 매일 마주하며 더러는 주저앉고 싶고, 때로는 집어치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일어섭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죠. 괜찮지 않을 때에도 숨고 싶을 때에도 나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김밥을 먹으면서 말이죠. 생각해 보면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김밥 정도의 것입니다. 나를 향한 진심과 사랑이 묻어 있는 것들 말이죠. 그런 것은 일어나서 더 살아가도 된다는 작은 신호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가난한 엄마가 남긴 김밥은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그건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울만한 위대함이자, 생을 이어가도 된다는 확신입니다. 예쁜 것만 먹고 자란 소중한 사람은 쉽게 넘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정성을 다해 만든 김밥은 대물림됩니다. 나에게 각인된 것을 물려주게 되어 있으니까요. 가지런한 김밥 하나를 자식 입에 물려주듯, 최선을 다해 나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내 아이들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사랑한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겠죠. 그 진심이 주저앉고 싶은 날,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예쁜 김밥 하나가 되어 주길 바라봅니다.
당신의 김밥은 무엇인가요?
오늘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 사랑을 되새기며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