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의 노래

프란스 할스 <류트를 연주하는 어릿광대>

by 아무
프란스 할스 <류트를 연주하는 어릿광대>

오해 없이 인생을 받아들이려면 얼마만큼의 시련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요? 인생에 거는 기대가 부풀었다가 가라앉다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인생이 적당한 답을 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늦어지는 건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인생을 향한 나의 노래는 언제나 희망과 기다림이었습니다. 오해의 시작이었죠.


인생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어려웠습니다. 그 단순함은 지루함이 되고 어려움은 무지가 되었죠. 그래서 인생을 초연한 얼굴로 류트를 연주하는 광대 앞에서 잠시 생을 멈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무와 의미의 희미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광대는 넓은 음역대를 아우르며 노래합니다. 녹록지 않은 세월을 보내며 인생의 굽이진 언덕들을 넘을 때마다 광대의 웃음엔 눈물이 더해졌을 테고, 아픔엔 깊이가 더해졌을 테지요. 인생에 해학과 서글픔을 녹여내는 그의 솜씨는 훌륭합니다. 인생을 터득한 자가 부르는 노래는 바람에 색을 입히고 흘러갑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바뀌는 바람의 색을 온몸으로 맞으며 광대가 연주하는 인생을 바라봅니다. 류트 소리를 타고 흐르는 그의 노래는 나를 잔잔히 만지며 바람처럼 빠져나갈 테지만 그가 칠해놓은 빛깔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들입니다.


사랑은 해가 가며 옷을 갈아입다 빛을 바랐다.

웃음은 소리를 내며 사라졌고, 눈물은 흘러내리며 사라졌다.

찌를 듯 날을 세운 미움은 세월의 풍파에 무뎌져 쓰지 못할 칼이 되었다.

슬픔은 가슴을 짓누르다 가라앉아 버렸고, 기쁨은 벅차게 피어오르다 날아가버렸다.

행복은 끝이 보이는 공허이고, 불행은 끝없는 공허이다.

희망은 솟아오르는 연기이고, 절망은 증발하는 연기이다.

진실은 거짓의 화려한 치장이고, 거짓은 진실의 솔직한 얼굴이다.

쾌락은 공허의 왈츠이고, 성취는 허무의 굴레이다.

꿈은 눈앞에서 춤추는 신기루이고, 현실은 신기루를 쫓느라 피곤하다.

손에 움켜쥔 것은 빠져나가는 모래알이고, 잡지 않은 것은 손안에 있다.

과거를 탓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허비하느라,

매일 있는 오늘을 만나지 못했다.

앞을 향해 뛰어가지만, 인생은 늘 뒤에 와 있었다.

노력을 과시하며 불평하지만, 거저 얻으며 사는 것에 대한 감사는 더디니

나는 채웠지만 인생은 비어있었다.

무로 시작한 인생을 유로 마쳐보려 뛰다가, 걷다가, 결코 멈추지 않다가

흘러가는 바람 한 줌에, 인생이구나! 알게 될지니

허무를 끊어내고 답을 찾은 자, 인생 너머의 곳으로 안내되리.


인생의 고비와 환희를 마주하며 광대는 알았을 겁니다. 고통과 감동이 내는 소리가 같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 찰나가 지나가면 노래는 다시 평온해집니다. 광대의 노래는 끝없는 변주곡입니다. 이 노래를 듣다가 알았습니다. 붙잡고 싶은 것은 허무였고 지나가는 것들이 의미였음을 말이죠. 버렸을 때 얻어지는 것들과 보냈을 때 다가오는 것들로 분주한 인생을 마주하며 나의 지루함은 극복되고 무지는 치유됩니다.


인생을 수정해야 한다면 지금일지도 모릅니다. 잡으려 애쓰던 허공의 손짓은 소리가 나지 않는 악기였죠. 이제 나의 손은 제대로 된 악기에 닿을 것입니다. 흘러가는 바람에 손을 내밀고 나는 노래합니다. 나의 손을 타고 흐르는 바람에 색이 입혀집니다. 이 빛깔은 나의 악기입니다. 평범함이 결코 평이하지 않음을 발견하며 나는 광대가 되어갈 것입니다. 악기의 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울림이 깊어가며 이 광대가 부르는 노래는 완성되겠지요.


공허한 투쟁을 멈추고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인생을 잠시 감상하시지요. 곁에 있다 떠날 것이고 떠났다가 다시 올 것입니다. 희망적인 시선과 실망스런 상황들로 더러는 행복하고 더러는 불행하다, 바람에 더해지는 색깔을 보며 인생이구나, 할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웃지도 쉽게 울지도 맙시다. 그저,


“이게 인생입니다.”

라고 말할 때


“나도 압니다.”

라고 답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바람을 타고 흐르는 류트 소리가 참 좋습니다. 당신의 인생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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