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걷는 사람들

신윤복 <월하정인>

by 아무
신윤복 <월하정인도>


보름달도 너무 밝아 안되었나 봅니다. 달 아래 은밀한 연인들은 겨우 앞을 분간할 정도의 빛으로 애틋함을 달래 봅니다. 달빛이 겨우 비집고 나오고 깊은 밤, 하루를 넘긴 사람들이 적막 속에 들어갈 때 달빛 속에서 분주한 걸음이 시작됐을 겁니다. 소리가 허락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짓으로 안부를 확인하고 애절한 마음을 부여잡고 견뎠을 그리움을 풀어놓습니다.


신윤복의 선이 좋습니다. 날렵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섬세하고 부드럽습니다. 남자의 눈은 여인에게 향해 있지만 발은 이제 막 길을 떠나려는 듯합니다. 한쪽 발을 들어 올린 남자의 발에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 날렵한 선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여인의 답을 들으려 눈길을 돌려봅니다.


여인의 발은, 글쎄요. 온전한 동의라고 말하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망설임 정도로 해두죠. 여인의 매력적인 붉은빛 신발은 남자의 발걸음만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남자의 몸은 방향을 바꾸는데 여인의 고개는 아직 숙여져 있습니다. 얼굴을 감싼 장옷을 야무지게 움켜쥔 여인은 이 달밤 사랑하는 연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요? 촘촘한 선으로 정성 들여 그린 두 사람의 모습이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아마도 양반집 도련님과 재주 많은 기생이겠지요? 두 사람은 어쩌다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사랑에도 둘은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도련님은 여인을 첩으로라도 곁에 두고 싶지만, 재주 많고 어여쁜 기생은 그 시대에 보기 드문 주체적인 여성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첩이 되어 살기는 싫습니다. 사랑 하나 얻으려 그 한 많은 삶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겁니다.


도련님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하고, 기생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망설입니다. 남자는 애가 타고, 여인은 눈물겹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저 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입니다. 어디에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언젠가는 들키고야 할 불완전한 곳에서 연인들의 불안한 밀회는 가슴 아픈 서사를 예측하게 만듭니다.


저들이 머문 저 벽. 그것은 사실 신분이라는 당시의 제도겠지요. 신분을 뛰어넘지 못한 두 사람은 진전 없는 사랑에 애달파합니다. 만약 남자의 신발이 벽을 향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여인이 장옷을 풀어헤쳐 담을 넘는 밧줄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벽을 넘어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면 둘의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은 어찌 될지 몰라도 애달픈 서성거림으로 끝났을 이야기가 조금은 박진감이 넘치는 이야기로 바뀔 것 같기는 합니다.


조선시대에 신분제도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신분을 벗어던지는 것도, 신분제의 부당함에 도전하는 것도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겠죠. 그러니 마음이 아파도 헤어지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을 겁니다. 여인은 도련님을 잊으려 가무 연마에 심취해 더 큰 명성을 떨치는 조선 최고의 기녀가 되었을 것이고, 도련님은 마음을 다잡고 글공부에 매진해 과거에 급제했겠죠. 저렇게 어둠에 간신히 숨 쉬는 달빛을 보는 날이면,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달을 보며 서로를 기억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날 겁니다.


벽 하나가 사랑하는 마음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벽을 넘지 못한 사랑은 아름다운 이별로 두 사람을 타이릅니다. 두 사람은 설득당하고 순응합니다.


마음은 길을 찾지만 보이는 길밖에 걸을 수 없습니다.

중력에 의거하여 벽으로는 걸을 수는 없습니다.

길은 충분하고 벽은 위험합니다.

벽은 막는 것이고 길은 걷는 곳입니다.

벽은 담장너머의 것을 가리고 길은 걸어갈 방향을 결정합니다.

어쩐지 신윤복의 벽은 저 연인들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둠을 버티고 선 저 장엄한 벽은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로 전환됩니다.


가슴이 잠깐 내려앉습니다. 나는 어느 벽에 기댄 채, 서성이고 있는 걸까요?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요? 나의 벽은 무엇일까요? 나의 한계를 정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결정하고,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현실을 들여다보며 벽을 세우는 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입니다. 나는 벽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높은 벽에 나를 가둔 채 애달픈 마음으로 갈 곳 없는 발만 서성거립니다.. 나의 결론은 정해져 있습니다. 나는 사회가 말하는 대로 살아질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드라마틱한 반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 사람들은 대체 나와 무엇이 다른 걸까요? 그들은 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곳을 걸었습니다. 나에게는 금기의 영역인데 그들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벽을 걷는 사람들.

그들에게 벽은 그저 다른 길이었을 뿐입니다. 몸의 한계를 넘어서고, 학력의 한계를 넘어서고,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들. 오늘의 나에 갇혀있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들. 실패에 개의치 않고 실수에 뒤로 물러서지 않으며 하지 않음을 변명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막혀있지 않았습니다. 계속 걸었습니다. 그것이 벽을 걷는 것은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안타까운 연인들의 뻔한 결론은 더 이상 나의 마음을 끌지 못합니다. 매일의 한 걸음으로 벽을 넘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닮고 싶습니다. 핑계와 이유들로 무장한 채 벽 안에 갇혀 만족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다시 걷는 법을 알려줘야 할 것 같습니다.


달빛 아래 애틋한 연인처럼 비극으로 끝나는 이이야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적겠습니다. 결론이 크게 다르지 않다라도 내 인생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향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벽을 올려다보는 일은 무섭습니다. 첫걸음은 넘어질 것이고, 두 번째 걸음은 비틀거릴 겁니다. 세 번째 걸음은 포기를 외치고 싶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벽을 걷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시작했을 겁니다. 무덤 같은 벽에 파묻혀 세상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나의 비극을 포장하지 않으려면 나는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벽을 넘어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내 이야기의 결론을 세상이 정하게 두지 않을 겁니다. 나는 최고의 명성을 얻는 기녀도, 훌륭한 학식을 가진 선비도 되지 않을 겁니다. 내 사랑을 이루고 거기서 행복할 겁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걸어보려 합니다. 벽을 길로 만드는 사람들 사이로 나도 들어가겠습니다.


수백 년 후, 나의 그림에는 벽을 걷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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