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 <양산은 쓴 여인 >
햇살이 잔잔하게 흘러 다니는 그림입니다. 참 고요하고 평화롭죠. 양산이 차마 가리지 못한 햇빛은 나의 눈에서 흩어져 다시 그림으로 돌아갑니다. 빛은 여인과 하늘과 풀과 바람에게로 스며듭니다. 빛이 감싸고 있는 그림은 아름답고 평온합니다. 빛은 모든 곳에 도달하여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빛이 부딪히는 곳의 풍경은 아름답고, 빛이 일렁이는 곳에는 평온이 찾아옵니다.
빛처럼 다양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빛은 잔잔하고 강렬하며, 평온하고 뜨겁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반짝거리며, 밝은 곳에서는 눈이 부십니다. 절망 가운데는 희망이고, 실패 후에는 떠오르는 도약입니다. 추운 곳에서는 온기이고 도전 앞에서는 강렬함이며 고요한 곳에서는 평화입니다. 봄에는 생명을 심고 가을에는 생명을 거둡니다. 긍정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보내며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고 결국엔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기억합니다. 여인이 서 있는 언덕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단연코 빛 때문일 겁니다.
모네는 양산을 쓴 여인을 명확한 선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사실 무엇하나 제대로 된 형체를 갖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윤곽이 희미해서 정확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인을 봅니다. 언덕 위의 풀을 보고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봅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알 수 있습니다. 뚜렷하지 않지만 모호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모네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을 그렸습니다.
간혹 내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명확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은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몰라 난감할 때가 있죠. 그 모호함은 존재에서 시작하여 내가 서 있는 이유와 걷고 있는 길의 정의까지 확장되곤 합니다. 내가 걸어야 할 길에 선 하나도 제대로 그어놓지 못하고 있는 생각,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고 있는 기분, 걷고 있지만 계속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헛헛함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냅니다. 선명하지 않은 나를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면 삶이 명확해질 줄 알았습니다. 분명한 길이 생기고 흔들리지 않고 걷는 나와 만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살수록 삶은 더 불투명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어제 알았던 것을 오늘은 모르겠고, 어제 맞았던 것이 오늘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내가 맞다고 말하는 것을 누군가는 틀렸다고 말하고 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누군가는 맞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존재하지만 내일은 장담할 수 없는 숱한 것들 속에서 나는 경계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땐 오히려 명확한 원색들로 이루어졌던 세상이 살면서 점점 그 색이 옅어져 희미한 수채화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희미하고 선명하지 않는 않은 나. 분명하지 않은 순간들에 나는 망설였습니다. 이렇게 모호하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하고 말입니다. 선을 긋고 경계를 세우고 싶은 욕구들이 치솟지만, 막상 펜을 들면 어디로 손을 뻗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맞고, 저렇게 해도 괜찮은 때도 있었습니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내가 마주한 삶이 애매하고 모호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삶은 원래 이렇게 모호한 건지, 아니면 내가 삶을 대충 산 건지 이 또한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모네의 여인이 아름다워서 다행입니다. 여인의 아름다움이 명확함 때문이 아닌 것은 더욱 다행입니다. 여인이 아름다운 것은 빛 때문이었습니다. 빛은 각도와 정도에 따라 사물의 모양과 인상에 영향을 줍니다. 빛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에 따라 상황에 맞게 가장 알맞은 빛을 비춥니다. 나는 모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과 사람들에게 나는 같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명쾌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는 것은 유연함이었습니다. 강해야 할 때와 잔잔해야 할 때, 드러나지 않아야 할 때와 주목받아야 할 때를 알고 밝기를 조절하며 모든 상황과 사람들에게 적절한 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설명하고 싶으면 빛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빛은 찬란하고 어떤 빛은 은은합니다. 어느 순간은 일출이고 어느 순간은 일몰입니다. 어둠을 드러내는 빛이 있고, 진실을 판명하는 빛도 있습니다. 물결 위에 윤슬도 빛이고 타오르는 불도 빛입니다. 나는 이 모든 빛을 품고 살아갑니다. 내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은 빛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나를 명쾌하게 부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불투명한 감각 속에 존재하지 않고 분명한 형체로 서고 싶어지는 순간 말이죠. 그럴 때는 핀조명 하나만 켜고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모든 조명이 꺼진 곳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때 나는 분명해집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빛입니다. 어둠을 받치고 서 있는 빛 안에서 나는 분명한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분명함은 나에게 더 많은 유연함을 가져다줍니다. 그곳에서 나는 빛의 정도와 밝기를 조절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게 어떤 형태의 빛으로 다가설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세상 속에서 나는 어느 정도의 경계 없음과 희미한 형태로 살아갈 겁니다. 내가 만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매번 같을 수 없기 때문이죠.
빛을 휘감고 걷는 사람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눈이 부십니다. 나의 존재와 내가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명확한 이름을 주지는 못합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이름은 그저, 양산을 쓴 여인입니다. 무엇이었든 나는 빛이 쏟아지는 곳에 있습니다. 양산이 필요할 만큼 많은 빛 속에서 나는 눈이 부시게,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