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판타지씨!
별일 없는 하루는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끔 판타지가 필요해.
평범한 날들이 무심하게 할퀴고 간 나의 하루는
지구에서 치료할 곳을 찾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불러 보는 거야.
친애하는 판타지씨!
오늘 밤,
지구의 자전을 멈추고
사람들을 냉동캡슐에 넣어줘.
달은 한쪽으로 치워주고
별들도 자리를 옮겨줘.
시간의 흐름이 의미를 잃어버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어둠 속으로 잦아들 때
별일 없는 나의 하루 사이로
당신이 걸어와줘.
차가워진 지구에서 어둠에 기대앉은
내 곁에 있어줘
별일 없었던 나의 일상을
가만히 들어줘
간간히 웃어 주고
어깨도 토닥여 줘
맛있는 것도 같이 먹어줘
듣기 좋은 음악을 틀어줘
오솔길을 같이 걸어줘
낮은 목소리로 당신의 오늘을 들려줘
감정 없는 눈빛에 무감각한 마음 말고
따스한 눈빛에 지극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줘
오늘 하루 고생했다는 인사도
내일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싫어
대신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 저 하늘 끝으로 나를 데리고 올라가 줘
거기서
눈으로 날 안아줘
말로 날 안아줘
팔로 날 안아줘
나에게 따뜻해줘
나에게 애틋해줘
내 눈물을 닦아줘
내 웃음을 찾아줘
기계적인 눈빛과
냉소적인 말투와
식어버린 마음과
형식적인 태도에
나는 너무 추웠어
36.5도의 판타지가 필요해
오로라처럼 하늘에 펼쳐지는 웅장한 온기로
나를 덮어줘
지구가 멈춘 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나를 다독여 줘
따뜻한 품에서 나를 녹여줘
별일 없는 오늘은
아무렇지 않은 하루가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