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지 않지만 사랑입니다.

약한 모성의 항변

by 아무

아이가 아프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오전 내내 잠을 자다

느지막이 병원을 다녀왔다.


밤새 고열이 나는 아이 곁에서

해열제를 먹이려고 긴장을 한 채 잠을 청했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이고 물도 한 모금 억지로 먹이고

다시 잠을 청했다.

몸이 안 좋은 아이 금세 잠이 들었고

뜨거워진 아이 몸을 쓸어주다 나도 어찌 잠이 들었나 보다.


몸이 좋지 않은 아이는 학교도 못 가고

아침 내내 잠을 자다 느지막이 병원을 다녀왔다.

독감이라고 한다. 연휴 전이라 수액을 맞았다.

연휴 일정에 차질이 없으려면 빨리 나아야 했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아이는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더 듣고 싶어 했지만, 쉬어야 한다고 양치하고

조금 눕자고 말했다.


실은 내가 너무 피곤했다.

돌봐야 하는 아이가 아픈 아이만도 아니었고

저녁도 준비해야 했다.

나도 좀 쉬어야 했다.

아이가 쉬면 나도 옆에서 좀 자고 싶었다.

몸이 힘든 아이는 더 이상 조르지 않고

양치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 덕에 나도 아이 곁에서 한숨 잤다.


아이들이 아플 때 위축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이 나고 아팠을 때

나는 내가 잠이 안 올 줄 알았다.

그 작고 여린 생명체가 열이 나는 데

잠이 온다는 것이,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너무 엄마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아이가 아프면 잠이 안 올 줄 알았다.

열이 나는 아이를 지켜보고

두 시간마다 열을 체크하고

열이 오르면 약을 챙겨 먹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밤을 새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침이면 정성껏 죽을 끓여

아이에게 먹여줄 줄 았았다.

엄마가 됐으니,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피곤했다.


아이는 밤에만 아픈 것이 아니기에

낮에도 아파서 칭얼대는 아이들을 챙기고 달래고

시간 맞춰 약 먹이고 밥을 하다 보면

밤에는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다.

맞춰놓은 알람에 겨우 일어나서 열을 재고

열이 나면 간신히 해열제를 먹였다.

그리고는 다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죽은커녕 제때 밥도 하지 못했다.

대충 집에 있는 국에 밥을 말아 먹이기도 하고

만만한 계란 반찬으로 한 끼 한 끼를 연명하듯 먹이기도 했다.

아이가 아픈데 엄마가 이렇게 부실할 수 있다니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성은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어찌 강하지 않단 말인가.

엄마의 자격이 박탈당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아이들을 충분히 돌보고 있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묻게 되었다.

누가 모성이 강하다고 했지?

어느 엄마가 아이가 아프면 밤을 새우고 아침에 죽을 끓이지?

도대체 어떤 엄마여야 체력의 한계를 넘어

모성이라는 강인한 이름으로 밤새 아이를 돌보고

완벽한 식단으로 아이의 식사를 챙기지?

어디 있지? 그런 엄마?


그러다 찾았다. 그런 엄마를

드라마와 cf에서.

강한 모성으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

엄마들.


엄마라는 이름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미디어의 영향 아래 엄마라는 존재를 학습하고 있었다.

체력의 한계도 없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엄마의 모양을.

엄마의 사랑은 희생의 아이콘이자 무한정한 애정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기준이 되어버린 강한 모성을 가진 엄마는 나에게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강한 모성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조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밤을 새지 못해도, 죽을 끓여내지 못해도 엄마는 엄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한 적이 없다.

그저 나의 아이로 와준 그 사실 하나로 아이들은 사랑 자체였다.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완벽한 엄마나 강한 엄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나를 사랑하고 내 품에 안긴다.

우리 관계에 처음부터 강함은 필요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밤을 새는 엄마는 되지 못할 것이다.

대신 아플 때 곁에 있어 줄 것이다.

힘들 때 안아 줄 것이고

걸을 때 손을 잡아 줄 것이다.

울 때는 눈물을 받아 줄 것이고

웃음을 보태줄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랑하며,

사랑할 것이다.


강한 적도 없었고

강하지도 못할 테지만

계속 사랑할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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