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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Nov 09. 2021

돌섬으로 나들이를 가다

1.

그해 여름 끝 무렵 토요일, 반세기 가까운 미국 생활이지만 돌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곳 주민이 된 친구 등촌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꽃게가 제철이면 무진장하다는 것이 꽤나 부럽던 것이 전부인 터에 그 좋은 날씨에 하필이면 태풍 쌘디가 집중 공략을 한 돌섬이냐... 예쁜 여자 이름 '쌘디'지만 어마어마한 힘으로 뉴욕 바닷가 한 귀퉁이를 초토화해버린 이 태풍이 다녀간 며칠 후 집에 휴가차 와 있던 딸 비비가 돌섬에 간다고 통고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차려입고 게다가 산소마스크까지 챙겨 넣고 돌섬 피해지역으로 청소 작업을 떠난다고 했다. 


  “거기까지 가지 말고 먼저 네 방 청소부터 해라” 


그 갸륵한 마음을 헤아려 볼 생각도 없이 내뱉는 엄마의 일갈을 뒤통수로 흘리며 나갔다가 밤늦게 흙먼지가 흩날리는 옷가지를 걸치고 밤늦게 돌아온 비비를 한심한 마음으로 보았다. 딸 비비가 멤버로 있는 뉴욕의 한 단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처지에 따라 재능과 시간을, 그리고 물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단체이다. 모임도 없고 서로가 만나는 일도 없이 온라인으로 모든 정보를 교환한다. 


  “산소마스크까지 쓰고 한 일이 뭐니?” 


관심 반, 한탄 반으로 내뱉는 내 말에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다. 


  “바닷물이 휩쓸어 간 해안가의 집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곰팡이가 집안에 가득해요. 그 벽돌을 뜯어내는 일이에요. 그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해있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전 해 여름, 이 단체에서는 빈민가의 한 블록을 미화하는 취지로, 소속된 예술가들이 낡은 건물들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할 때도 며칠씩 땡볕 아래에서 작업을 하느라 비비는 온몸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어서 다녔었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참으로 한심하지만 막을 길이 없다. 그리고 한 주일이 지난 토요일 아침, “오늘 돌섬에서 카니발이 있는데 가보고 싶으면 함께 가요.” 어깨에 산타클로스처럼 묵직해 보이는 커다란 보따리를 둘러메고 나갈 채비를 하며 선심 쓰듯 말한다. 아니, 난리 통 같은 재난 구역에 느닷없이 카니발은 또 웬 말인가.... 성금을 모아 봉투를 전달하는 자리에 쭈욱 둘러서서 찍은 사진이 신문에 나면 그것으로 할 일 다 한다고 생각하는 내 정신 수준으로는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그 보따리 안에는 뭐가 그렇게 잔뜩 들어있니?”

  “재해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책이에요, 어제 타운의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용 책을 한 권에 1달러씩 50권 샀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어린이들은 책을 읽어야 해요.” 

  “거기까지 차로 몇 시간 걸리니?”

  “트래픽이 없으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돼요.”


왕복 세 시간에다가 다리 건널 때마다 톨비가 적지 않고 가스값도 만만치 않은 것을 재빨리 계산해보려니까

장난이 아닌데, 어쨌든 기특한 생각인지라 아이에게 속마음을 들킬까 봐 얼른 따라나섰다.


  “그래, 같이 가자.”


조금은 구경 다니는 것 좋아하는 터에 호기심도 생겼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 이스트 하이웨이를 지나 트라이보로 브릿지를 건넌 후 케네디 공항을 지나서 벨트 파크웨이에서 일러주는 대로 출구로 나가, 이름 모르는 다리 하나를 또 건너며 보니, 멀리 보이는 대서양의 푸른 물결이 언제 허리케인을 실어 왔나 싶게 미풍도 없는 잔잔함은 남쪽 어느 따뜻한 휴양지로 달려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돌섬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며 보니, 길가에는 아직 청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바닷물이 핥고 지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은 채 흙과 모래를 뒤집어쓴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낮이지만 번화가였을 것이 분명한 대로의 상점들은 아직도 전기 시설이 복구되지 않아 컴컴한 실내가 들여다보이는데 쇼윈도나 벽돌이 억지로 대강 닦아 놓은 흔적은 보이지만 소금물을 머금은 진흙탕물을 뒤집어 썼던 자태가 역력하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지가 2주가 넘었지만 아직은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2.

  “오늘은 지난주보다 형편이 훨씬 좋네요, 지난주에는 물에 젖은 자동차들이 거리에 꽉 차서 자동차들이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큰 막힘없이 우리는 돌섬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 눈에 얼핏 보기에 눈 끝까지 펼쳐져 있는 고층 건물들이나 길가의 주택들은 재해와는 거리가 먼 휴양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푸른 망망대해와 그 위를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사는 부러운 부유층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 같았다. 


눈앞에서 파도가 달려드는 모래밭에 차를 세우고 보니 애초에 이곳은 모래밭이 아니고 쌘디가 대서양 바닥의 모래를 쓸어 올려 모래로 덮어버린 차도였다. 파도가 들이치는 모래사장 끝에는 기둥 같은 골조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밑으로는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커다란 시멘트 블록들이 쇠기둥과 얽혀서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원래는 보도블록이었다는데 단 몇 시간의 자연재해가 할퀴고 간 그 황량하고 삭막한 몰골은 손에 든 사진기에 담을 마음조차 움츠러들게 무서웠다. 그리고 해변에 끊임없이 줄지어 서 있는 바다를 향한 집들은 하나같이 크고 작게 상처 입은 몰골사나운 자태로 말없이 서 있었다. 아직 주민들이 들어와 사는 기색이 없이 외롭고 처량해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대강 고쳐서 살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TV에서 보고 듣기만 했던 쌘디의 엄청난 위력과 그 피해를 직접 와서 보니 그 자태는 거의 공포스러웠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지평선에는 거대한 배 한 척이 뜬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망망대해를 무심한 듯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쌘디가 다녀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해변이었을까... 자꾸만 무겁게 젖어드는 마음을 달래며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에는 공용 주차장이었던 듯한 공터에서는 카니발이 시작된 듯 울긋불긋한 광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행진을 하기 위한 대열을 짜고 있었다. 몇몇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비비는 한 모퉁이 땅바닥에 넓은 종이 두루마리를 펼쳐놓고, 짊어지고 온 보따리에서 책을 꺼내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원하는 책은 그냥 가지고 가세요'라는 푯말을 걸어 놓았다.


얼핏 주민들보다는 각종 소속된 단체의 로고가 있는 셔츠나 각양각색의 카니발 의상을 입은 카니발 참가자들의 수가 더 많아 보였다. 아이들을 위한 즉석 놀이 장소가 마련되고 퍼펫 쇼가 공연되는 간이 무대와 미니 서커스단들이 묘기를 펼칠 높은 망대와 그네들도 설치되었다. 모래가 덮인 드넓은 공용 주차장에는 마치 예행연습이라도 철저하게 했었던 것 같이 질서 있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곳이나 장난감들과 티셔츠 등 의복을 쌓아놓고 나누어 주는 테이블들이 자리를 잡았다.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장소 정리를 외치는 리더는 없었다.


그냥 가져가라는 책을 가지러 오는 아이들도 없는 한산한 미니 책방 옆 의자에 앉아 별로 할 일도 없던 나는 

주민들에게 카니발을 알리기 위해 거리를 행진하는 광대 복장의 밴드 뒤를 따라나섰다. 마치 피해 상황을 점검하는 조사원처럼 거리를 살폈다. 엄청난 피해를 당한 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구경 다닌다는 사실이 조금 꺼려졌지만 정말 구경거리가 많았다. 건물들은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은 나무 널빤지나 담요들까지 펄럭거리는데 멀리서 보던 아름다운 주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외관은 견고하였던지 외양은 멀쩡해 보여도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었고 반쯤 날아간 지붕이며, 뿌리째 뽑힌 앞마당의 나무들은 숨막히게 참혹하였다. 번듯하고 말끔한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에서 무언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타가는 사람들, 안내 표시판을 따라 따뜻한 음식이 무상 제공되는 건물로 향하는 사람들, 차를 타고 다니며 이러이러한 물건이 필요한 사람은 어디로 오라고 주소를 외치며 안내 방송을 하는 사람들... 번듯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장화나 운동화를 신고 청소도구를 들고 떼를 지어 청소해 줄 곳을 향해 가는 적십자 티셔츠를 입은 젊은 남녀, 늙은 남녀들을 보니 각종 인종이 뒤섞인 듯하다. 그래도 황량해 보이지만 삶의 터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와 있었던지 밴드의 풍악 소리에 따라 여기저기에서 어린이들의 손을 이끌고 카니발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핼러윈 복장을 만들어 파는 회사에서 기부했다는 수십 박스의 코스튬을 하나씩 걸친 어린아이들은 순식간에 백설 공주가 되고 슈퍼맨이 되어 희희낙락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허연 화가 부부는 아이들을 하나씩 앉혀놓고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어찌나 빨리 멋지게 그려주는지 제 그림을 받아 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나도 앉아, 한 장 그려 받고 싶었지만 참았다. 


서커스 단원들은 그네에 붉은색의 길고 넓은 밧줄을 걸고 묘기를 보여주고 마술사들은 마술을 부리고 중세 기사 복장을 한 사람들은 검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묘기를 부렸다.모래흙이 가득히 쌓인 공터에는 끊임없이 환호와 즐거움의 탄성이 가득했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관람석에서 볼 수 있는 그 어떤 볼거리보다 훨씬 풍족하고 감탄스러웠으며, 그 무엇보다 가슴에 따스함이 가득 찼다.


어느덧 비비의 서점은 동이 나서 책을 진열하기 위해 깔았던 흰 종이 두루마리는 도화지가 되었고, 어린아이들 몇 명이 엎드려 제공된 물감과 컬러 매직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돼지인지 고양이인지 분간이 안 되는 동물 얼굴을 그려놓은 아이에게 비비는 '넌 크면 아티스트가 될 거야, 네게는 정말 굉장한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어.' 하며 등을 두드려 준다. 아이의 눈이 금방 자랑스러움에 반짝이고 그 옆에 서 있던 엄마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다. 나는 한쪽 구석에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앉아, 제공되는 먹거리를 챙겨 먹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칭찬받기 위해 기대의 눈을 반짝이며 비비의 주위에 몰려서 있는 아이들. 방금 들은 한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가슴에 와닿는다.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카니발까지 열어주니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희도 다시 살 힘을 얻어요. 허리케인이 몰아쳤을 때 얼마나 무서웠던지, 어른들도 공포를 느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모두들 정말 힘들고, 언제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오늘 다시 깨달았어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어요. 모두 정말 감사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희망의 꽃잎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에게 카니발은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암담한 터전에 망연한 시름을 씻어주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건져내는 기쁨의 씨앗을 뿌리는 나눔의 손길이 모이는 곳이다.


돌아오는 차 속, 그곳에 가기 전에는 없었던, 알 수 없는 감동의 벅차오름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곳에 갔었던 것만으로도 내 하루를 어쩐지 그냥 보내지 않았다는 뿌듯함. 인간은 참으로 아름답구나, 언젠가 또다시 이곳을 찾으리라. 아름다운 인간들에 의해 쌘디라는 이름을 가진 태풍으로 폐허가 되었던 일이 전설처럼 남은 말끔한 휴양지의 해변으로 탈바꿈을 한 돌섬을.... 그리고 고양이를 고양이답게, 돼지를 돼지답게 그릴 줄 아는, 늠름하게 자란 청년들을 만나고 싶다. 이 땅을 지키고 이끌어가는 힘으로 자란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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