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역관, 홍순언과 종계변무

수필 임진왜란 제4부

by 수필가 고병균

선조는 이덕형을 명나라에 특사로 파견했다. 의주까지 쫓겨 온 선조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그런데 ‘조선이 일본과 합세하여 명을 침공하려 한다.’라는 유언비어까지 퍼졌다. 이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특사를 파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을 타개한 자는 이덕형이 아니었다. 그 공로자는 뜻밖에도 일개 역관 홍순언이었다. ‘역관’이란 조선 시대 외국어 통역 업무를 담당한 관리다. 당시 역관을 배출한 기관은 ‘사역원’인데, 중국어, 위구르어, 일본어, 만주어(여진어), 몽골어, 유구어 등 6개의 언어를 가르쳤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때,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걸었다. ‘정명가도’란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비켜 달라.’는 것이었다. 명나라도 팔짱을 낀 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명나라 내부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러나 복잡한 상황을 조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은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의 역관 홍순언이다.


홍순언의 공로를 따지기 전에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홍순언이 명나라에 갔을 때, 통주라는 곳에서 기생집에 들어갔다. 이는 사절단을 맞이하는 통상 관례이다. 거기서 상복(喪服) 입은 기생을 만났다.

순언 “이건 상복이 아닌가? 무슨 일로 이런 옷을 입었는가?”

기생 “네, 저의 아버지는 남경의 호부시랑이셨는데, 공금횡령의 누명을 쓰고 옥사했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장례비용이 없어 기생으로 들어왔습니다.” (호부시랑은 호부상서 바로 아래 벼슬로 차관에 해당된다)

순언 “음~ 그래.”

기생 “비록 기생이지만 첫정만큼은 통 큰 사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눈이 동그랗게 커진 홍순언이 기생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순언 “작은 나라의 벼슬아치가 어찌 대국의 귀한 집 따님을 욕보일 수 있겠습니까?” (순언은 보따리를 풀어 무역자금 2천 냥과 인삼을 선물로 준다)

조선에 돌아온 홍순언은 공금 횡령죄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종계변무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역관의 목을 치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이다. 선조는 역관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이 엄포를 놓았다. ‘종계변무’의 '종계'란 종가의 혈통을 말하고, '변무'란 사리를 따져서 억울함을 밝힌다는 뜻이다. 명나라에는 《대명회전》이란 역사책이 있다. 거기에 오류가 있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친을 ‘이자춘’이 아닌 ‘이인임’으로 잘못 기록된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인임’을 ‘이자춘’으로 수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명나라는 조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1394년 조선 개국 이후 1588년 제14대 왕 선조 시절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종계변무’는 조선과 명 사이의 외교분쟁이다. 그 분쟁이 무려 189년 동안 계속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역관들은 숙의 끝에 홍순언을 보내기로 하고, 횡령금 2천 냥을 대신 물어주었다.

이리하여 홍순언이 명나라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홍순언이 연경(오늘날 북경)에 도착했을 때 명나라의 예부시랑 석성이 마중 나온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기생 류 씨가 함께 나온 것이다. ‘예부’는 오늘날 외무부에 해당된다. 명나라의 외무부 차관이 조선의 일개 역관을 마중 나오다니,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은 사례는 없다.

더 놀라운 것은 200년 가까이 끌어온 외교 분쟁 ‘종계변무’를 해결한 일이다. 두 달 만에 그런 것이다.


그동안 기생 류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류 씨는 2천 냥과 인삼을 판 돈을 합하여 빚도 갚고 장례비용도 해결했다. 그리고 기생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그녀는 고향을 떠나려고 했다. 가사를 정리하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예부시랑 석성을 찾아가서 하직 인사를 올렸다. 그때 석성은 중병을 앓고 있는 자기 부인을 간호하게 했다. 그것은 기생 류 씨에게 행운이었다. 얼마 후 부인이 세상을 떠났고, 정성을 다해 간호한 류 씨를 자기의 계비(둘째 부인)로 맞이했다. 선행은 선행을 낳는다는 꿈같은 이야기다.

석성의 부인이 된 류 씨는 날마다 비단을 짰다. 그런데 거기에 ‘報恩’(보은)이란 글자가 들어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석성이 물었다. 류 씨 부인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석성은 ‘동방에도 그런 의인이 있는가?’ 하며 탄복했다. 류 씨는 그 비단 100 필을 선물했다.

비단 한 필은 세로 3자(약 90㎝) 가로 40자(약 12m)이다. 조선 시대 비단 한 필의 가격은 쌀 720㎏의 가격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것을 오늘날의 가격으로 환산해 본다. 쌀 20㎏을 5만으로 계산하면(720÷20 ×5만 원) 비단 1 필 값은 180만 원이고, 100 필의 값은 1억 8천만 원이나 된다.


선조는 ‘종계변무’를 성사시킨 일행 19명에게 광국공신이라는 상을 내렸다. 특별히 홍순언에게는 우림위장을 임명했다. ‘우림위장’은 임금을 경호하는 군대 사령관으로 종 2품 벼슬이다. 역관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높은 관직이다. ‘당릉군’이라는 군호도 하사했다. ‘군호’를 하사하는 것은 왕실과 한 핏줄이라는 의미다. 선조가 신하에게 베푼 최고의 대우이다. 또 땅과 노비도 하사했다. 그 땅이 을지로 입구에 해당하며 당시에는 ‘보은단동’ 혹은 ‘보은골’이라 불렀다. 홍순언은 1598년 향년 68세로 향수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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