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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고병균 Dec 01. 2023

[4-8] 조선의 은인, 석성

수필 임진왜란

명나라 조정은 조선의 파병을 꺼리고 있었다. 명나라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부터 왜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선도 의심하고 있었다. 조선이 왜와 연합하여 명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쟁이 일어난 지 보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선조가 평양으로 몽진을 갔다. 이 소식을 듣고 명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 갔다. 조선의 왕이 피난을 가장하여 왜군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의심했다. 명은 직접 사람을 보내서 상황을 파악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명의 경제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여진이 세운 후금이 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명의 파병을 애타게 기다리는 선조로서는 모든 상황이 암담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금이 ‘파병을 해주겠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조선은 거부했다. 오랑캐라 하여 무시했고, 명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서 그랬다.     

복잡한 역학 관계는 조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선조는 이 상황을 타결하기 위해 홍순언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홍순언은 연경에 가서 석성과 류 씨 부인을 다시 만나게 되고, 석성은 명의 조선 파병을 위해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종계변무의 일로 중국에 갔을 때 석성의 벼슬이 예부시랑(외무부 차관)이었는데, 지원병을 요청하러 갔을 때는 석성의 벼슬이 병부상서(국방부 장관)였다. 어쩌면 이렇게 절묘할까? 하늘의 도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나라의 조정에서 조선 파병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병부상서 석성 한 사람뿐이었다. 석성의 주장은 이러했다. “만일 왜군이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에 주둔하게 되면 반드시 요동을 침략할 것이고 명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조선의 문제만이 아니라 명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홍순언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고구려 후예)의 통역관으로 전장을 누비다가 1598년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세상을 떠났다.      

조선 파병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석성은 어찌 되었을까? 그는 군비의 막대한 소모에 대한 책임으로 투옥되었고 옥사했다.

석성은 조선에게 은인이다. 그분의 영령 앞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그의 자손을 조선이 지켜주어야 한다.      

석성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다. 그것을 우려해 석성은 류 씨 부인과 두 아들 석담과 석천에게 조선으로 망명할 것을 유언했다. 그 유언에 따라 류 씨와 그의 아들 둘은 조선으로 건너와 귀화했다. 선조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첫째 석담은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수양군에 봉해졌고, 해주 석 씨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 석천은 경북 성주에서 정착하였고, 성주 석 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석 씨 형제 석담과 석천을 한 군데서 살게 하지 않고 천리나 되는 먼 곳으로 떼어놓았을까? 아마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청은 조선에 있는 자국의 유민들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석 씨 일가를 경상도 산음(山陰) 지방으로 피신시키고 전답을 다시 내렸으며 엄격한 보안을 통해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곳이 지금의 경남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일대이다. 석 씨 가문은 과거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도 집성촌을 이루고 지금은 석담의 15대손과 16대손들이 살고 있다. 


석성의 첫째 아들 석담의 13대손인 석상용은 일제강점기 시절 의병을 일으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해주 석 씨 가문은 조선에 두 번이나 은혜를 베풀었다.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명의 지원군을 보내주었고, 한말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켜 조선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198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해주 석 씨는 2,600명 정도라고 한다. 해주 석 씨뿐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전쟁을 치르던 명나라 장수 중에 조선으로 귀화한 성씨들이 여럿이 있다. 절강 신 씨, 절강 편 씨, 개그우먼 팽현숙으로 대표되는 절강 팽 씨, 삼공 마 씨, 소주 가씨 등이다. 


2015년에는 남양 홍 씨(홍순언) 종친 대표와 해주 석 씨(석성) 종친 대표, 절강 편 씨의 종친 대표가 430년 만에 함께 만나기도 했다. 절강 편 씨의 대표 인물은 편갈송,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과 함께 조선에 파견되었으며,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운 장군이다.     


홍순언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 뛰어난 통역사가 될 만큼 외국어를 잘하는 것,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도울 때 손익 계산 따지지 말고 ‘통 크게’ 도와주는 것, 도움을 받았으면 반드시 보은(報恩)하는 것 등을 배우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홍순언의 친절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친절을 가르쳐야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친절이 몸에 배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나라를 지키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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