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홍순언의 진심

수필 임진왜란 제4부

by 수필가 고병균

홍순언은 일개 역관에 불과하지만, 종계변무를 해결했다. 200년 가까이 끌어온 외교분쟁을 1588년에 해결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홍순언이 또 엄청난 일을 해낸다. 과연 무슨 일을 했을까?


사실 명나라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부터 왜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이 왜와 연합하여 명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헛소문이 퍼졌다. 그것을 증명하듯 전쟁이 일어난 지 보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선조가 몽진을 떠난 것이다. 평양을 지나 의주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명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조선이 왜군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의심했다. 명은 직접 사람을 보내서 상황을 파악했다.

명나라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경제가 피폐해진 것과 후금이 명을 위협한 것이다. 후금(後金)은 여진족 누르하치가 1583년경에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세운 나라이다. 만주는 한반도의 북쪽에 위치하고, 연해주는 만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명의 파병을 애타게 기다리는 선조에게 후금의 제안이 들어왔다. ‘파병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이다. 가뭄에 단비와 같은 제안을 선조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유는 후금을 오랑캐라고 무시한 것이요, 명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 복잡한 상황에서 선조는 명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명의 지원병을 요청하기 위한 사절단인데, 그 중심인물은 홍순언이다.

지원병을 요청하려면 병부상서를 만나야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홍순언 앞에 나타난 사람은 석성이었다. 종계변무를 해결해 준 예부시랑(외무부 차관) 석성이 이번에는 병부상서(국방부 장관)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애국가 가사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명나라에서 조선에 파병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는 중에 병부상서 석성 단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말로 조선 파병을 주장했다.

“만일 왜군이 조선을 점령하고 조선에 주둔하게 되면 반드시 요동을 침략할 것이고 명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조선의 문제만이 아니라 명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조선 파병이 결정되었다. 1차 조승훈, 2차 이여송이다. 이랬던 석성이 명나라의 감옥에 갇혔다. 이유는 ‘막대한 군비를 소모했다.’는 것이다.

석성은 멸문지화(滅門之禍)의 변을 당하지 않도록 망명을 유언했다. 그 유언에 따라 부인 류씨와 석담과 석천 아들은 조선으로 건너와 귀화했다.

선조는 조선의 은인, 석성의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첫째 아들 석담은 황해도 해주에 정착하여 수양군에 봉해졌고, 해주 석씨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 아들 석천은 경북 성주에서 정착하였고, 성주 석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석담과 석천을 한 군데서 살게 하지 않고 천 리나 되는 먼 곳으로 떼어놓았을까? 그들을 보호하려는 조선의 조치였다.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가 들어섰다. 청은 조선에 있는 자국의 유민들을 소환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석씨 일가를 경상도 산음(山陰) 지방으로 피신시키고 전답을 다시 내렸으며 엄격한 보안을 통해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곳이 지금의 경남 산청군 생초면 평촌리 일대이다. 석씨 가문은 과거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도 집성촌을 이루고 지금은 석담의 15대손과 16대손들이 살고 있다.

석성의 첫째 아들 석담의 13대손인 석상용은 일제강점기 시절 의병을 일으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해주 석씨 가문은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명의 지원군을 보내주었고, 한말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켜 조선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조선에게 두 번이나 은혜를 베푼 셈이다.

198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해주 석씨는 2,600명 정도라고 한다. 해주 석씨뿐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파병된 명나라 장수 중 조선인으로 귀화한 성씨들이 여럿이 있다. 절강 시씨( 시조 : 시문용施文用), 절강 편씨(시조 : 편갈송片碣頌), 개그우먼 팽현숙으로 대표되는 절강 팽씨(시조 : 팽우덕彭友德), 상곡 마씨(마귀의 증손 마순상麻舜裳), 소주 가씨(시조 : 가유약賈維鑰) 등이다.

2015년에는 남양 홍씨(홍순언의 후손) 종친 대표와 해주 석씨(석성의 후손) 종친 대표, 절강 편씨의 종친 대표가 430년 만에 만나기도 했다. 절강 편씨의 시조 편갈송은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과 함께 조선에 파견되었으며,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운 장군이다.


조선의 역관 홍순언이 남긴 업적은 둘이다. 하나는 200년 가까이 끌어온 종계변무를 해결한 일이요, 또 하나는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명의 지원병을 이끌어낸 일이다.

그 엄청난 일을 일궈낸 힘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홍순언의 진심이라 말하고 싶다. 그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생 류씨의 마음을 움직였고, 예부 시랑 겸 병부 상서 석성의 마음도 움직였으며, 결국 명나라 왕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홍순언의 진심은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하늘도 움직였다. 중국에 처음 갔을 때 기생 류씨를 만나게 하더니, 종계변무의 임무를 띠고 갔을 때는 예부시랑 석성을 만나게 하고, 지원병을 요청하러 갔을 때는 병부상서 석성을 만나게 했다. 이게 바로 진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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